남자들은 왜 외로워 할까~
산골에 살 때다. 어떤 분이 십이년 만에 찾아 왔다. 대화도 통하고 묵직했던 분이라 우린 무척 반가웠다. 우리 부부 그분 차에 동승하여 K시까지 원정 갔다. 점심으로 국수도 대접 받고 귀가했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가운데 아궁이에 군불 때고 술상을 차렸다. 12년 동안 쌓였던 이야기가 오가며 술도 얼큰해졌다. 우리부부 취침할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막 들이붓던 술 기운인지 이 친구 외롭다 한다. 그러자 울 산적 역시 자기도 외롭단다. 이 세상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딨냐고~
그래?? 나는 하나도 안 외롭던데~ 산적(남편) 있자나~ 딸래미도 있자나~ 손주들있자나~ 손님들도 끓자나~ 뭐가 외로워~~ 하지만 분위기상 내심(內心)을 조용히 잠재웠다. 그랬더니 그 친구, 노래까지 불러대며 외로움을 토로했다. 이슥해진 시간에서야 그 친구를 집 근처 민박집 숙소로 돌려보내고 우리 부부 늦은 취침에 들었다. 군불을 적게 땠는지 이불 속이 추워 나는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저리 뒤척이다 왜 남자들은 외로운지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결론은? 어쩔 수 없다! 였다.
한번 쏟는 정액은 고작 3~5cc다. 방출되는 정자는 1억5천 내지 3억마리.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충은 부고환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 즉, 예선전이다. 남은 주자, 300에서 500 마리. 그 중에서 오직 1개의 정자 만이 난자에 착상한다. 정자는 방출되는 순간부터 무조건 달려야 살아남는다. 정충으로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피 터지는 경쟁을 해야하는 숙명(宿命=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명)을 안고 태어나는 정자. 방출되는 순간, "나는 자유다!" 라고 환희의 탄성을 지를 새가 없다. 따뜻한 고환 온실에서 내보내지기 때문에 죽기 전에 번개 같이 숨을 구석을 찾아야 한다.
그뿐이랴~ 주변에 포레스트 검프 뺨치는 놈들은 방출되기 무섭게 담박질을 해댄다. 난자를 향해~ 숨 돌릴 새가 어딨어~ 500개나 되는 놈들이 달리고 있는데~ 그 중에 겨우 한놈. 난자 벽을 뚫는다. 그리곤 자궁에서 자란다. 열달 후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런 슬픈 DNA를 갖고 있는 남자들.
요람에서 극진히 보호되며 사내아이로 자란다. 안온하고 포근한 이 품 저 품 옮겨다니며~
사람들의 품과 요람은 아기의 울타리다. 서너살 무렵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는 울타리(fence. 푄~)가 부분 부분 무너진다. 초,중,고 학교 생활은 울타리가 그나마라도 둘러쳐진 상태. 군 입대를 기점으로 울타리가 서서히 걷혀진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 그때부턴 스스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 가슴 벌떡이는 상대를 만나게 된다. 결혼한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 가정의 새내기 울타리가 된다. 제아무리 남녀 평등 시대라 해도 어렵고 힘 든 역할은 남자에게 주어지지 여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뿐이랴~ 군대는 남자만 간다. 노모는 아들한테 기댄다. 처자식은 가장만 쳐다본다~ 그 팔자(八字 = 사람의 한 평생의 운수)는 빼도 박도 못한다.
푄스는 고라니, 멧돼지 등 들짐승에 들이받히다 못해 아예 뚫려 버리기도 한다. 푄스는 농장의 울타리다. 이놈 저놈한테 쪼이고 들이받친다. 집에서 자잘한 고장이나 사고가 나면 가장은 해결사가 돼야 한다. 돈 많으면 돈이 일부 해결해 주기도하지만, 돈을 팡팡 버는 가장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가장은 한 가정의 울타리가
돼야 한다. 울타리는 둘러쳐지는 것이지 둘러싸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즉, 껍질이지 내용물이 아니다. 식물도 껍질째 대우받아 먹히는 건 별로 없다. 그만큼 홀대받는 것 또한 껍질이요 울타리다.
그러니 얼마나 외로우랴~ 인정받고 대우받고 사랑받기를 원하는데 상처받고 동댕이쳐지고 문드러져야한다. 그러니 그 심정 오죽하랴~
내가 결혼하여 살아보니 남자는 결코 강철 푄스가 아니었다. 강하게 보이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여렸다.
그럼에도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 내야만 한다. 위안 받고 휴식하고픈 평범하고 여린 마음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강한 위상은 허울 좋은 표상일 뿐, 아무리 힘든 일을 했던 하루여도 귀가해선 처자식 품에 편안히 안기는 게 아니라 품어줘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어김없이 나쁜 아빠, 못난 남편이 돼 버린다.
그런 일이 쌓이며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들로부터 무시 당하고 소외된다.
그러니 얼마나 외로우랴~ 불쌍하고 짠~한 남편이자 가장들이다.
나는 딸만 키워봤지 아들은 키워보지 못했다. 손주들이 태어나 자라는 걸 보니 아들일수록 엄마 품에 안기기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요녀석들 수시로 안아 달란다. 우리 딸은 그러지 않았었는데~ 우리딸만 그랬나 싶어 주변을 눈여겨 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딸보다는 아들들이 훨씬 더 엄마 품을 그리워했다.
커서 자신이 안기지 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라도 하듯~
그걸 느끼게 된 뒤 혹여 외로울까 싶어 남편을 안아주기라도 하면 오히려 내가 안기는 꼴이 돼버린다.
체구가 남편보다 훨씬 작아서~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대부분이 다 그랬다. 남편들이 아내보다 덩치들이
컸다. 설령, 아내가 남편보다 덩치가 크다 해도 다리만 길었지 품은 좁았다. 체구적인 품도 그렇지만 마음의 품 역시 그리 넓지 않았다. 울타리가 되어 전후좌우(前後左右) 바깥을 바라보지 않는 팔자라서인지 시야 자체가 상대적으로 좁다. 때론 먼 곳 까지도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니 그 좁은 품에 안길 수가 있나~ 엄마한테 어리광 부리며 안기고 싶어도 엄마는 이미 늙어서 허리 꼬부라져 버렸는걸~ 오히려 업어드려야 하는 걸~ 아빠? 늙을수록 꼰대 기질 부리자나~ 더우기
동성(同性)이요 동극(同極)이자나~ 같은 극은 밀어내자나~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짠~한 가장(家長)들. 와이프가 엄마처럼 자신의 실수를 탓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듬어 주길 바라는데 요즘 세상 그런 와이프 어딨어~ 우먼파워 막강 시대인걸~ 그러니 한잔 들어가면 외로워 외로워 한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손주들만 보면 안아달라 할 때 꼬옥 안아준다. 힘에 부치면 어부바 라도 해준다. 남편은 어떡하냐고? 오늘 아침에도 이불을 월담하여 안아줬더니 결과적으로 내가 안겨버리더라구~에효오~
남자는 기둥이다. 석가 세존 밑에 500명의 제자인 불보살이 있었듯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즉 거대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들이 남자다. 기둥을 떠 받치는 것은 주춧돌이다. 주춧돌은 여자다. 수많은 주춧돌과 기둥이 있어야 거대 맘모스 지붕을 떠받칠 수 있다. 기둥은 서 있어야 기둥이다. 누워 있는 건 기둥이 아니다. 그러니 서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하중(荷重 = 물체에 작용하는 외력(外力)을 받겠는가~ 위와 아래로부터의 압력은
실로 클 것이다. 그러니 편히 눕고 싶은 기둥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얼마나 외롭겠는가~
하지만 지붕은 내려다 보고있고, 주춧돌은 올려다 본다. 그 말은, 보고 있는 눈들이 많다는 말이다. 나 역시 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보고 있다. 피로에 지친 당신 눈 밑의 다크써클도 보인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남자인 당신의 운명(fate. 페잇)이요 숙명인 것을~
남자들이여~ 많은 분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건 누군가는, 무언가는 당신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피치 못할 역할을 무언으로 응원하면서요. 사뭇 지칠 땐 호소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는 당신 마음의 짐을 일부 덜어드릴겁니다. 마음의 짐만 조금 덜어도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집니다. 부디 당신을 지켜보는 이가 없다 여기지 마십시오. 누군가는 당신을 향해 조용히 응원 하고 있습니다. 힘 내시기 바랍니다. 당신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이 세상 다 하도록.....
(이 글은, 가정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어느 남성분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글을 읽고 2020년에 산적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소환했습니다. 많은 부분 첨삭을 거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