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웃음소리
여고 때 어느 수업 시간. 선생님은 교단에서 책을 보며 설명하고 계셨다. 학생들도 고개 숙이고 책을 보며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해찰 안 했다. 헌데 어느 순간 아랫배가 살짝 아픈 듯 하더니 나도 모르게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억눌리고 억눌려 있던 강한 스프링이 튕겨져 오르듯이~
일순. 선생님 말씀만 들리던 교실은 긴장된 정적이 맴돌았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속엔 번개가 쳤다.
"이게 뭔 조화지?" 나는 북극 지방 맹추위에 쪼그라든 남정네 고추 마냥 쪼그라 들었다. 고개가 푹 숙여졌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몇초 후, 조용한 정적을 깬 선생님 말씀. 말씀이 들림과 동시에 내 마음이 요동쳤다. 범죄자의 모습, 축 늘어뜨린 어깨로 복도에 나가 쪼그려 앉아 양팔 높이 쳐들고 앉아 벌 서는 모습이 막 그려졌다. 학생들 시선은 이미 내가 범죄자임을 알고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선생님, 숙였던 고개를 곧추 세우고 소리 났던 방향에 눈길을 둔 채 말씀하셨다.
"아따! 그놈 웃음소리 한번 요란~하다" 순간, 말똥구리만 굴러가도 웃는 이상한 버릇이 있던 십대의 여학생들이 디비졌다. 와하하하하 깔깔깔깔깔~ 수업이 실종되는 순간이었다. "이게 뭔 조화더냐~" 난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내 되돌아온 내 정신. "정녕 조화로고~" 복도에서 벌을 안 서도 됐다. 그 묘하고도 이상한 나의 웃음소리는 그렇게 유야무야 되고 이내 수업은 재개되었다.
팍팍하던 시절이었다. 호구지책 삼아 나는 건설 현장이 아닌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6.25가 터졌다. 오잉?? 뭔소리여~ 내가 태어나기 전이거던~ 아참 그렇지~ 참고로 6.25는 1950년 발발했다) 허리 사이즈 24인치, 체중 43kg, 계란 후라이 젖가슴, 낮은 키, 비리비리한 몸뚱이의 가녀린 여자애는 슈퍼 캐샤에 매장 관리에 상품 진열, 배달 등등. 온갖 일을 도맡아 하며 얄궂은 삶을 영위해 갔다.
5.18이 터졌다. 살아남았다. 결혼도 했다. 아이도 태어났다. 공무원이 돼 있던 산적(남편)은 어느날, 소갈머리 없이 어느 여인의 꾐에 넘어가 보증을 서 줬다. 부도가 났다. 여인은 도망갔다. 월급이 반으로 깎였다. 나는 입도 뻥긋 하지 않았다. 그 당시 공무원 봉급은 얼마 되지 않을 때 였다. 절반은 시댁에 드리고 있었다.
그러니 다 살았지뭐~
한편 나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미용사 라이센스도 따 놓았던 터였다. 어느날 나는,
"어이~ 그러지 말고 우리 큰 물에서 놀세~" 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산적은 사표를 냈다.
의원 면직 처리 됐다. 수도권으로 튀었다. 6.29 선언의 배경이 된 시위 현장에도 있었다. 일부러가 아니라 사는 곳이 시위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
여차저차 몇년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돼 있던 산적. 개발실을 차렸다. 전직 공무원 출신 아니던가~ 흠집 없는 너무나 깔끔한 개발 계획서는 수주를 따내기에 충분했다. 실력도 인정받았다. 잘 나갔다. 직원도 5명까지 불어나 있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개발실을 때려 치웠다. 이사도 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빵빵한 실력자라는 입소문 덕에 어느 회사에 입사했다. 잘 살았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엎친데 덮친 격, 시어머니도 돌아가셨다. 기분이 멜랑꼴리 해진 산적, 어느날 저홀로 입산해버렸다. 울고 넘는 박달재야~~어이고 데이고~ 훌쩍훌쩍~ 코 팽! 팽!!~ 여차저차 나도 님(산적) 따라 입산했다. 다시 합쳤다. 그렇게 산골에 살던 때. 인생의 스케줄상이었는지 어땠는지 방송에 떴다. 인간 구름떼가 몰려왔다. 몇년이 흐르며 거품이 서서히 빠졌다.
이젠 찐팬 만이 남았다. 마당에 놓인 탁자에는 저녁 때마다 찐팬이 몰려와 지지고 볶았다. 3,40대의 젊은 부부들이었다. 생기발랄했다. 머리도 비상했다. 톡톡 튀는 유머 감각으로 서로서로를 웃겼다.
문제는 나였다. 날마다 백숙에 음식 장만에 청소에 뒤처리에 곡소리가 절로 났다. 몇 년을 그랬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아니 못했다. 탁구공이 날아오면 우선 받아치고 봐야 했으니까. 뒤늦게서야 나의 처지를 알아차린 산적. 흐흐흐 나쁜 뇨석~ 그렇게나 일찍 알아채다니~ 그나마라도 알아준 게 내겐 행운이었다.
산적은 그 후 팬들에게 자기가 먹을 음식은 가져오라고 했다. 서로서로 가져오다보니 푸짐했다. 이젠 나도 찐팬 맴버십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날리기 시작했다. 묘하디 묘한 그 웃음소리가.
後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