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없다
우리 형제의 제일 위, 맏이는 딸이었다. 언니는 1940년대(年代) 생이다. 나의 유일했던 언니였다. 언니는 나와 띠동갑이었다. 나는 언니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낮잠 자는 사이에 다녀갔던 게 전부였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엄마와 형제들에게서 들었다. 사진으로는 많이 봤다. 사진 속의 언니는 짧은 단발머리도 있었고 아가씨가 되었을 때의 얼굴도 있었다. 단발머리 일 때의 언니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영민함과 총명함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언니는 공부를 아주 잘했다. 호남의 ㅎ군(郡)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다. 우등을 계속 유지했던 언니는 전남여중에 합격했다(그 당시엔 중(中),고(高),대(大)학교 전부 시험제였다). 전남여중은 K시에 있었다. 그 당시 전남의 최고 명문 여중이었다. 시골 학교에서 최명문인 여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 공로로 언니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평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되기도 했다(가족들에게 전해들었던 이야기들이다).
당시 아버지는 6.25 전쟁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어느 어업조합 이사였다. 부모님은 언니를 K시에 자취시켰다. 우리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엄마는 동생들과 시골에서 함께 살았다. 내가 언니를 제대로 보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가계(家計)가 어려워졌다. 언니는 어쩔 수 없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우수 학생들만 간다던 간호 고등 기술학교(전남대학교 3년제 간호학과의 전신이다. 학생들은 졸업 후 서독으로 파견 되기도 했었다)에 진학했다. 언니는 국내에 남았다. 그리고 K시 보건소에 들어갔다. 언니의 봉급은 어려워진 가계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20대 중반으로 접어들던
꽃다운 나이였다. 00사였다. 엄마와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졌다. 특히 엄마는 딸과의 사별(死別)을 더욱
힘들어했다.
엄마는 호남 ㅇ군(郡)에서 내노라 하던 창녕 조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1910. 08.29일부터 1945.08.15일 까지 총 34년 11개월 16일 동안)인 1920년대(年代) 초중반에 태어났다. 엄마의 부모님은
한약방을 하셨다. 내가 국민학교 저급학년일 때 엄마의 친정에 따라 간 적이 있다. 다른 건 기억이 별로 안 나는데 집 뒤켠에 장독대가 있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항아리가 꽤 있던 장독대였다. 엄마의 오빠들도 두세번 본 기억이 있다. 특히 한복 차림의 큰 오빠는 기라죽히 약간 큰, 지성 깃든 얼굴이었다.
한학자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그런저런 집안 여건으로 엄마는 그 당시 중등 교육까지 마치셨다. 일어도 잘하셨고 한자도 많이 아셨다. 유교(儒敎) 교육을 받고 자란 엄마는 은장도(銀粧刀 = 은으로 만든 짧은 칼. 여자들이 정조를 지키기 위한 칼)를 지참하여 시집오셨었다. 우리가 옆에 있으면 아버지와 일어로 대화 하셨다. 엄마는 매일 신문을 보셨다. 주로 동아일보였다. 그 당시엔 식자층이 많이 읽던 신문으로 기억한다. 신문은 국,한문 혼용이었다. 처음에 한문이 많던 신문은 차츰 한글이 많아졌다. 나중에는 한문이 자취를 감추고 한글 전용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처럼 갸름한 얼굴에 좁장한 어깨를 가진 미인도를 닮은 얼굴이었다. 유교적 교육을 받아서인지 예의범절이 뛰어나셨다. 자존감도 강하셨다. 이름 석자에 3가지의 현명함이 들어 있던 엄마였다. 지혜로우셨다. 예지 능력도 꽤 있으셨다. 오빠들에게 전해 들었던 이야기다. 저녁이 깊어 어두운 무렵 엄마가 오빠들에게 밖에 누가 왔다~ 나가봐라~ 해서 나가보면 꼭 누군가가 와 있었노라 했다. 미리 약속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여중학교 시험을 치렀을 때도 합격자 발표 전에 미리 아셨었다. 그러저러한 여타 이야기를 꽤 들었다.
장난끼도 많으셨다. 아버지의 친목계에 나가시면 모두들 노는 가운데서도 결코 빠지지 않으셨다. 신발 앞쪽에 코가 튀어나온 좁장한 흰 고무신을 벗어들어 막대 끝에 걸고는 마이크 대용 삼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셨다.
책보기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내가 여중 때 하교하여 방에 들어가니 엄마가 낄낄대고 있었다. 서유기였다.
그러던 우리 엄마였다. 엄마 집안의 어르신들은 엄마가 단명(短命 = 명이 짧음)한 사주(四柱)를 타고 났다
하여 일부러 11살이나 많은 우리 아버지에게 시집 보내셨다.
그러던 엄마였는데...
뒤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