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없다
집안 어르신들 말씀마따나 단명한 사주여서인지 40대 중후반 돌아가셨다. 내게 슬픔을 가득남겨주고서~
나어린 삼형제에게 엄마 잃은 슬픔을 잔뜩 안겨주고서~ 아버지는 잘 모르겠다. 우는 모습을 못 봐서.
내가 국민학교 상급학년 일 때 엄마와 우리 삼형제도 K시로 이사왔었다. K시는 교육 도시다. 중학교 때 부터는 무조건 K시로 보내지던 언니와 오빠는 그대로 따로 살았었다. 그만큼 자식들 교육을 중시하셨다. 엄마
살아 생전 아버지는 엄마와 나어린 우리 삼형제를 K시에 마련한 집에 남겨두고 어망 공장이 있던 ㅁ市에서
혼자 사셨다. 엄마와 아빠는 주말부부셨다. 그러다 돌아가신 거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내 아래로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가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여동생은 나와 같은 여고에 다녔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게 세월이다. 그 사이 오빠들은 각기 인생길로 흩어졌다. 새엄마가 들어오자 집에 가끔
들어오던 바로 위의 오빠는 발길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새엄마는 아버지가 사시던 ㅁ市와 우리가 살던 K市의 집을 가끔 오갔다. 나중엔 아버지가 사시던 곳에서 주로 사셨다. 어느날 부턴가는 아예 오지 않았다. 나와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는 집에 덩그마니 남겨졌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땐 집에 식모(食母 = 남의 집에서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해 주는 여자)가 있었다. 흘러 넘치지는 않았지만 집 전체를 사용하며 그런데로 넉넉하게 살았었다. 헌데 엄마가 돌아가시자 가정 형편이 서서히 쫄아들었다. 식모도 내보냈다. 상하방에 세입자도 들였다. 우리 삼형제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사업이 폭망했다. 새어머니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아버지는 진 빚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교도소에 갇혀 버렸다. 경제사범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도 누군가에게 넘어가버렸다. 동생들은 학교도 중퇴해야 했다. 우리 삼형제는 갈 곳이 없었다. 굶기도 했다.
보다 못한 둘째오빠가 직업마저 팽개치고 우리들에게 왔다. 몇년 후 손발이 닳도록 노력한 오빠 덕에 남동생은 수도권의 ㅅ대학을 졸업했다. 여동생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과 결혼했다. 여동생 역시 미국에서 모(某) 주립대학을 졸업했다. 미국인이 어렵다던 회계학 전공이었다. 여동생 남편의 부모님은 부동산이 꽤 있었다. 여동생 남편은 든든한 某 공사 직원이었다. 여동생 역시 좋은 직장에 다녔다. 시부모님의 재력 덕인지 승승장구했다. 주(州) 회계 감사장까지 올랐다. 남편보다 직위가 높았다. 주지사 출마 권유까지 받았다. 우리 형제들은 반대했다. 그 직책도 그런대로 좋지 않냐고~
어느날, 신(神)의 시샘인지 운명인지 동생은 위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했다. 얼마 뒤 재발했다. 의사는 치료해봐야 다시 재발할거라 했다. 그러자 여동생은 곡기를 끊어버렸다. 서서히 여위어 갔다. 남동생과 둘째 오빠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보내 온 사진에는 예전의 동생은 간 데 없고 피죽이 말라붙은 산 송장이 있을 뿐이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다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남은 건 나뿐이었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여자다.
언니는 1940년대(年代) 생이다. 엄마는 1920년대 생이다. 여동생은 1950년대 생이다.
언니가 죽은 지는 60년이 되어 간다. 엄마가 돌아가신지도 55년이 되어간다.
여동생이 죽은 지는 내년에 딱 10년이 된다.
언니는 명석하여 공부를 잘 했고 우리 가족에겐 믿고 의지하는 기둥이자 자랑거리였다.
엄마는 남편과 우리 가족들 모두를 6.25 전쟁통에서도 고스란히 지켜낸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이자 어머니였다. 특히 내겐 여자로서의 소양과 기품(氣品)을 가르쳐준 자부심(自負心)이었다.
여동생 역시 공부를 잘 하여 남은 형제들에게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자랑거리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내 무릎에 앉아 "언니야~언니야~" 하며 어리광 부리던 동생이었다. 나를 엄마처럼 여기던 동생이었다.
반면에 나는 미련하고 멍청하다. 공부도 딱히 잘하지 못했고 그저 평범하다.
그런데 왜 신(神)은 그런 나를 지금껏 살려주고 있을까?
그런 나에게 부처는 왜 이런저런 깨우침을 주고 계시는걸까?
내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겠다.
나는 도대체 아는 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