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입버릇
우리 엄마는 나를 낳아놓고 고민을 많이 하셨단다. 이노무 아기가 당최 울지를 않으니 이거야원~
물론, 이 세상에 나올 때는 나도 울었다. 응애 응애 응애앵~ 하고. 그닥 크지 않은 소리로.
우리 어메, 그런 아가를 젖먹여 놓고 일하다 한창 때가 지나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더란다.
"아차차~ 젖 먹일 때가 한참 지났지~ 근데 왜 조용하지?" 서둘러 방에 들어가보면 아기는 혼자 뭔가를 보며 방글거리고 있더란다. 기저귀에는 똥 오줌 질펀하게 퍼질러놓고서.
안도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기저귀 갈고 품에 안아 젖꼭지를 물리고 엄마는 걱정스레 아기를 쳐다봤단다.
젖살이 올라 포동포동하고 뽀얀 살결의 예쁜 아가. 눈을 맞추며 엄마를 빤히 쳐다보는 아가.
"혹시 얘가 어디 잘못 된 게 아닐까? 보통 아기 같으면 배고파도 울고, 오줌싸도 울고, 똥 싸도 울고, 심심해도 울텐데 이거야원~ 얘는 왜 이러지?" 은근슬쩍 엄마는 걱정 했단다.
내 위로는 언니 하나 오빠 셋이 있었다. 아이를 넷이나 키워봤지만 나처럼 그러지 않았단다. 배고프면 울고 똥 싸도 울고 혼자 있어도 울던 아기들. 네 놈 다들 인간 타이머들. 아니 아기 타이머들. 근데 얘는 왜 이럴까?
그래도 아기는 잘 자라주었다. 제법 자라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도 역시 마찬가지더란다. 숟가락에 밥풀떼기 몇 개 올려 먹이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자라더란다. 헌데 문제는 여전히 혼자 오물거리고 고물거리더라는 것. 밥풀떼기 먹여 놓으면 저 혼자 흙 토방에 앉아 놀기 일쑤. 흙바닥에 오줌 질펀히 싸놓고 그 흙을 조막손으로 오물조물하며 지치지도 않는지 그렇게 혼자서만 놀더란다. "뭐지? 왜 이럴까?" 엄마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런 나를, 그런 둘째 딸을 키우셨단다. 이름하여 우리집 '순둥이'.
엄마가 가끔 이웃 동네에 가서 오래 걸리면 큰오빠가 나를 업고 이웃 동네로 젖먹이 원정을 갔단다. 꽤 걸리는 먼거리인데도 도대체 아기가 죽은 듯이 있더란다. 미동도 없는 아기가 걱정되던 오빠. 지나가던 행인을 멈춰 세우고 "예예~ 혹시 우리 애기 죽었는지 한번 봐주쇼~ 하도 안 움직여서 그요~" 하고 물었더란다. 그저 오빠 등짝에 빈대 붙어 새근새근 잠만 잘자던 아기. 오빠의 걸음걸이에 흔들리면서도~
그렇게 나는 말수 적은 조용한 아이로 자랐다. 벙어리인 양 도대체 말을 하지 않던 쪼꼬만 계집애. 좋다 싫다 의사 표현이 도대체 없던 계집애. 울 아부지, 내가 아기 때, 살결이 하도 하야니 곱고 예뻐서 전쟁이 다시 나면 나만 업고 도망갈란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셨단다. (6.25 전쟁이 끝난 1,2년 뒤 태어난 나. 6.25 전쟁은 1950년에 발발했다) 그런데 우리 아부지의 입버릇을 귀신이 들었는지 어느날 사단이 벌어졌단다.
오빠들은 머스마들이라 누이가 어떻게 놀건 말건 지기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지이~ 헌데 밥 때가 되어 아가를 찾으니 안보이더란다. 두어살 때라 어디 갈 리는 없고 방에도 없고 부석짝에도 없고 문간방에도 없고 뒤뜰에도 없으니 이거야원~ 큰일 났다 싶은 울 어메, 오빠들을 닦달 했더니 다들 모르더란다. 오메오메 이놈의
노릇을 어이할꼬~ 어여 찾아봐라~ 클 났다.
오빠들이 달구새끼들 튀듯 여기저기 동네방네 튀어 다니며 수소문 했더니, 마을을 지나던 어떤 행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란다. 오다봉께 엿장수가 웬 아기를 안고 가던데 혹시 모르니 가보라며 지나온 곳을 일러 주더란다. 오빠들이 득달같이 달려가보니 대체나 어떤 엿장수가 엿판을 등에 짊어지고 품에 뭔가 안고 가더란다.
가보니, 나더란다. 가족들이 애가 타던지 말던지 조막손에 엿을 쥐고 쪽쪽 빨며 엿장수 품에 안겨서~ 어처구니 없던 오빠들. 엄마에게 알리려고 한놈은 집으로 튀고, 한놈은 우리 애기라고 목청 돋우고, 한놈은 엿장수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며 우리 애기라고 띵깡을 놨단다. 히히히~
그래 결국 나는 다시 우리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긍께, 우리 아부지 왜 나만 업고 도망
가신다 하셨능고~ 그런 말 안하셨으면 엿장수도 날 업고 도망가지 않았을껀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