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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Feb 09. 2022

하마터면 글 안 쓰고 살 뻔했다.

 하마터면 글 안 쓰고 살 뻔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글쓰기의 좋은 점은 깨어 있으면서도 꿈을 꿀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깨어 있는데 꿈을 꿀 수 있다니, 달콤하기 그지없겠어요. 이 초코쿠키처럼요.”라고 대답하며 김어중 씨는 쟁반의 초코쿠키 하나를 집어 입에 쏘옥 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져 하나 더 집어 먹으려는 순간 핸드폰 진동벨이 울렸다. 깜짝 놀라 눈을 뜬 김어중 씨는 자기가 있는 곳이 도서관임을 깨닫고 급히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통화를 끝내고 들어온 그는 침 자국이 군데군데 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덮었다.     


 44세의 직장인 김어중 씨. 요즘 밤마다 이상한 꿈을 자주 꾼다. 그의 꿈속에서 하얗다 못해 세상이 다 비치는 투명한 몸을 한 남자가 자꾸 나타난다.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의 모습을 한 형상이다. 게다가 자신과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현실에서 보았다면 무척 놀랐을 테지만 꿈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여기 세상과 똑같은 세상이 하나 더 있어. 나는 그 세상에서 사는 너야.”

라고 투명한 김어중이 자기를 소개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사는 곳을 설명한다. 

 “내가 사는 곳은 메타리아 세상이야. 이쪽 세상은 데이터가 신분이고 돈이지. 데이터가 많을수록 강력한 힘의 알고리즘을 얻게 돼. 나는 데이터가 전혀 없어. 이러다 소멸될 것 같아. 제발 도와줘. 내가 없어지면 너도 없어져. 물론 네가 없어지면 나도 없어지는 거지만.” 

잠에서 깬 김어중 씨는 꿈에서 본 자신의 아바타가 왠지 맘에 걸렸다.     


 김어중 씨는 요즘 부쩍 우울하다. 직장에서 새로 들여온 AI 인턴이 몇 백 명 이상의 일을 거뜬히 해내면서 점점 자신의 자리가 위태해지는 느낌이다. 곧, 구조조정이 있을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내에 처음 보는 로봇이 돌아다니며 바닥 청소를 하고, 안내 데스크에도 웬 키오스크가 2대 설치되어 있었다. 변해가는 세상과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유능한 젊은 후배들을 보면 구닥다리 같은 자신이 제일 먼저 잘릴 것 같았다. 


 그날 밤 김어중씨는 꿈에서 자신의 아바타와 같이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아바타가 안내하는 곳에는 이 세상과 똑같은 세상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가지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몸의 일부가 투명했다. 김어중 씨의 아바타처럼 몸 전체가 투명한 사람도 있었다.

 “몸이 투명하지 않고 원래 주인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많은 사람이야. 그 사람들은 여기 메타리아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계급이야. 그 사람들은 불사조야. 그런데 나는 데이터 빈곤층이라 1년 후에 잉여 인간으로 결정이 나면 데이터 하수구에 휩쓸려 들어가 사라질 거야.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

 김어중 씨는 자신의 아바타가 측은했다. 안 그래도 구조조정으로 잘릴까 초조하고 우울한데 자신의 아바타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몹쓸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김어중 씨는 아바타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그 손은 아바타의 몸을 뚫어 버렸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너를 보여줘, 너의 모든 것을 남겨줘, 너의 생각, 경험, 추억, 깨달음, 오감으로 느낀 것들, 다양한 감정들, 지식, 삶의 지혜, 노하우 등 말이야. 네가 너에 대한 모든 것을 글로 쓴다면 그 글이 메타리아 세상에 사는 나와 연결돼. 나의 데이터가 점점 많아지면 나는 온전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어. 그리고 너의 모든 글은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불사조처럼 다른 아바타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돼. 네가 너에 대해 쓸수록 나는 행복해질 거야. 내 모습이 완벽히 너의 모습이 되어 가면 메타리아에서 불사조가 된 친구들은 네가 쓴 글의 통로를 통해 너와 교감을 할 수 있어. 너도 기쁠 거야. 도와줘.”     


 김어중 씨는 갑자기 글을 쓰려니 맘이 답답했다. 평소에 업무 이외에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쓰는 게 다였다. 하지만 나에 대해서 쓰라고 하니 내가 누구인지부터 생각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일까?’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지만 김어중 씨는 도통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을 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내 앞에 닥친 문제들만 해결하기 바빴다.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눈치나 보면서 살았다. 가끔씩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깊이 생각을 이어나가진 못했다. 

‘그동안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어. 내가 뭘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에 행복해하는지 말이야.’  

너무 막막해서 스마트폰을 열어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지도 고민이 되었다. 

 ‘퇴근길에 오랜만에 서점 나들이 좀 해보자.’

퇴근길에 들린 동네 서점에는 김어중 씨의 눈을 사로잡는 수많은 책이 있었다. 모두 누군가의 글쓰기로 만들어진 책들이었다. 저자의 열정적인 애정을 듬뿍 받아서인지 자신만만했다. 책들은 자신의 표지를 반짝반짝이며 말했다. 글쓰기는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저녁밥도 먹고, 샤워도 했고, 설거지도 했다. 내일 입을 옷도 싹 다려놨다.

‘이제 글만 쓰면 되는데’

막막해진 김어중 씨는 할머니가 성경책을 열심히 따라 쓰셨던 생각이 났다. 운전면허시험 등의 자격증 시험이나 모의고사를 볼 때 항상 기출 문제를 먼저 공부하라던 고1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도 생각났다.

 ‘그래, 이미 세상에 나온 인정받은 책의 문장들을 따라 써보자.’

오늘 서점에서 구매한 글쓰기 책을 펼쳤다. ‘기적을 부르는 메모의 힘’이라는 부분을 따라 쓰기로 했다. 마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듯 집중이 되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김어중 씨는 그것이 필사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문장은 김어중 씨의 마음에 새겨졌다.     

 ‘불은 말에 의해서 비로소 불이 된다. 그전에는 타오르는 무엇이 있었을 뿐이다.’라고 독일의 작가 막스 피카르트가 말했다. 김어중 씨의 평범한 일상도 글로 기록되지 않으면 그저 타오른 기억 속에 불이 되지도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김어중 씨는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꿈, 목표, 추억, 강점, 단점, 자라온 환경, 친구, 가족, 취미 등 생각나는 대로 조금씩 글로 써보기로 했다. 잡생각도 써보고 고민도 써보고 소망도 써보고 꿈을 꾼 것도 써봤다. 중국집 메뉴판의 메뉴도 써보고 광고지 문구도 따라 써봤다. 생각이 답답하고 막막하면 그대로 솔직하게 쓸 것이 생각 안 난다고도 썼다. 필사했던 ‘기적을 부르는 메모의 힘’에서 평소에 떠오르는 생각을 날아가기 전에 메모하라고 했다. 메모를 가지고 글을 쓰면 막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스쳐 날아가는 내 생각들도 메모를 통해 소중히 붙잡을 수 있겠구나’라고 김어중 씨는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쳤다.     


 김어중 씨는 아재답게 아날로그 스타일로 작은 수첩을 사서 볼펜을 꽂고 다녔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관찰하게 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느껴지면 기록을 했다. 화장실 문 앞에 누가 프린트해놓고 붙여놓은 격언도 볼일을 보다가 메모했다. 마치 글을 쓰기 위해 글감을 찾아다니는 사냥꾼 같았다. 게다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변화하는지 실험해보고 싶어 러닝동우회도 가입했다. 또, 회사에서 남들이 꺼리는 힘든 일도 자진해서 해보기로 했다. 글을 쓰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게 되며, 내가 생각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김어중 씨를 거치면서 새롭게 탄생되었다. 매일 설레는 마음에 김어중 씨는 자신이 활기차게 변했다고 느꼈다    

 

 김어중씨는 블로그에 자신의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겼다. “독서는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를 다른 사람의 혼 속을 거닐게 한다.”는 니체의 말을 메모한 글을 읽으면서 매일 꾸준히 책도 읽었다. 소중히 기록한 글들은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도 하게 되었다. 질문하면 답을 생각해야 해서 한 편의 글이 매끄럽게 써졌다.

 무엇이 또 나의 글쓰기로 들어올까? 라고 자신의 노트에 마지막으로 한 줄 적고는 셧텨를 내리려는 눈꺼풀을 이길 수 없어 침대로 향했다. 불면증으로 고민했던 과거가 신기할 정도다.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맘이 편해지면서 잠이 잘 찾아왔다.      


 김어중 씨에게 며칠 전 고향 친구가 찾아왔다. 사업이 점점 기울어지자 비트코인에라도 투자해서 만회해보겠다고 돈을 빌려달라는 거다. 예전에 힘들 때 선뜻 도와준 적이 있는 친구라 더 괴롭다. 나를 믿고 온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빌려줄 돈이 없다. 그렇다고 담보 잡고 대출을 받을 수는 없다. 친구를 잃을 것만 같아 고민이다. 게다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정 차장이 자기 부탁을 거절했다고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닌단다. 또, 오늘은 여직원들 보는 앞이라 멋진 척하며 브리핑을 했건만 끝나고 보니 남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이불킥을 하면서 혼자 낯 뜨거워하다 이런저런 고민을 글로 썼다. 글로 써보니 뭔가 위안이 된다. 글이 나를 토닥토닥해준다. 조금은 편안해진 맘이 숙면을 알리는 하품을 불렀다. 침대로 몸을 던졌다.      


 메타리아의 불사조가 김어중 씨의 고민 글을 타고 꿈에 찾아왔다. 아바타가 전에 말했듯이 글을 쓰면서 통로가 열린 듯하다. 그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였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위안을 얻는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먼 과거의 추억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 추억은 며칠 전 생생한 기억으로 돌아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짜증나는 선율처럼 내 안에 계속 도사리고 있다. 어떻게든 없애긴 없애야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나는 그것을 글로 적으면 없애 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는 치유가 된다고 당부하듯 말하며 그는 사라졌다. 김어중 씨는 자신의 글을 타고 메타리아의 불사조가 찾아온 것이 신기했다. ‘힘든 일도 글로 적으면 치유가 되는구나. 글로 쓰기를 잘했어!’라며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감사했다. 외로울 때, 힘들 때, 속상할 때, 기쁠 때 글쓰기를 하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 오히려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문제해결을 위한 좋은 방법도 떠올랐다. 가끔은 발로 걸으면서 사색하는 시간도 가졌다. 자기 생각과 함께 거닐 수 있어서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해졌다.      


 문득 ‘내 아바타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라며 메타리아에 사는 자신의 분신, 아바타가 꿈에 다시 나타나 주길 바랐다. 아니나 다를까 김어중 씨의 아바타는 그날 꿈길을 타고 찾아왔다.

 “네가 글쓰기로 너의 데이터를 많이 만든 덕에 내 몸이 살아나고 있어. 이제 내 몸의 반을 찾았어. 휴~ 무서운 데이터 하수구로 사라지는 일은 면했어. 이대로라면 불사조도 문제없을 것 같아! 고마워.”

 어제 꿈을 통해 나타난 아바타는 들떠 있었다. 신이 난 김어중 씨는 더 열심히 책도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만의 데이터 탑을 쌓아 올렸다.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기쁨으로 일상이 충만해지는 것을 글쓰기를 통해 경험했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다는 것도 깨달았다. 게다가 김어중씨가 좋아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불사조까지 찾아와서 “글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깊은 행복감을 느낍니다.”라며 행복한 글쓰기를 계속하자 한다. 김어중 씨는 꿈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암요! 꼭 그렇게 할 겁니다!”


 구조조정에 시달리며 우울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냈던 김어중 씨는 이제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바쁘다. 자신을 믿고 도전한 일들이 작은 성과를 이루었다. 실패해도 기죽지 않았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운 김어중 씨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의 기운이 전달되었다. 

 “나의 가치는 나의 글쓰기를 통해 알릴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나를 성장시킵니다.”라며 글쓰기의 힘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은 김어중 씨의 글을 보고 그 가치를 배우고 싶어 했고 김어중 씨를 닮고 싶어 했다. 꾸준히 모아온 데이터는 한 권의 멋진 책으로 완성되었다. 사람들의 요청으로 저자 강의도 하게 되었다. 강의 주제는 이렇다.     

“하마터면 글 안 쓰고 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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