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unna Feb 09. 2022

미래 연인에게 편지쓰기

미래 연인에게 편지쓰기     


태어날 때부터 친구로 지낸 희정이라는 친구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갔다. 내가 1년 먼저 태어났지만 워낙 애기때부터 함께 어울려지내 그냥 친구가 되었다. 어릴 때 앨범을 보면 나는 희정이 옆에 서있고 희정이는 보행기에 앉아 있었다. 희정이가 5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간 후 우린 서로 끔찍이도 그리워했고 편지로써 달래었다. 희정이가 편지 내용에 인용한 발라드가수 신승훈의 ‘보이지않는 사랑’이라는 노래를 잊지 못하겠다. 희정이를 떠오르면 그 노래가 생각난다. 가끔 명절 때는 내가 사는 동네로 와서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가 학업에 몰두하느라 연락없이 몇 년이 흘렀고 그런 희정이와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 대학생이 되었을 때 홍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기다리는 희정이는 오지 않았고 두 세시간 동안 길가에 서성이다가 씁쓸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왔다.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보았을까? 희정이는 멀찌감치 내 모습을 보진 않았을까? 무엇이 그녀를 선뜻 나서지 못하게 했을까? 마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처럼 희정이는 내게 남아있다. 희정이가 잘 지내길 기도한다.     


나의 유년 시절을 함께 한 친구도 떠나갔고 초, 중 고를 함께 보낸 30년 우정도 떠나 보냈다. 대학교때 만난 친구들도 결혼과 동시에 뿔뿔히 흩어졌다. 나는 오롯히 혼자가 된 것 같았다. 김미경 강사님이 진정한 친구는 50이 넘어도 60이 넘어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어떤 지인도 나이 50이 넘어서야 진정한 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어릴 때 만난 친구만이 진정한 친구가 아님을 안다. 오히려 자신만의 삶을 만들고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더욱 성숙했을 때 의미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앞으로 미래에 만나게 될 연인같은 친구에게 미래일기를 써본다. 친구를 만난다면 이 미래일기 글을 선물로 주고 싶다. 신기한 듯 같이 하하 크게 웃어보고 싶다.      


2023.02.04.

까페에서 햇볕을 쬐면서 하루죙일 멍 때리는 것이 행복했던 나는 매일 까페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해가 잘 드는 창가 쪽에 앉아 한쪽 팔을 따끈하게 지지면서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분주한 듯 일렬로 떼지어 서둘러 어디로 가는 듯한 구름의 모습도 보았다. 매일 나랑 노느라, 멍을 때리느나 나름 바빴던 나는 나만큼이나 멍 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았다. 하루는 내가 늘 앉던 자리에 그 친구가 앉았기 때문이다. 가끔 까페에서 마주칠 때 마다 한결같이 책을 펼쳐놓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그 이후로 관찰하게 되었다. 까페 밖으로 난 정원에 보라색 허브꽃이 멋진 융단을 만들고 있었을 때다. 꾀나 세련되고 멋져 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 친구는 탁자 위에 내가 쓴 책이 올려놓고 읽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 딸국질이 나왔다. 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처음 보았던 것이다. 나는 용기내어 말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지금 읽고 계신 책은 재미있나요?” 나의 호기심 어린 관찰이 부른 용기가 만남의 시작이 되었다. 내 눈에 너무 멋져 보이는 친구는 나와 같은 지구인의 탈을 쓴 외계인과였다. 덜렁거리는 나와는 다르게 꼼꼼한 면이 좋아보였다. 각자 혼자서도 너무 잘 노는데 마치 전생부터 알고 지낸 듯 하다. 서로가 미묘하게 조화로웠다. 이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관계는 내 생애 느껴보지 못했다. 서로가 소중한 느낌이 드는 것도 신기했다. 뭐든 다 주고 싶은 친구인 것이다. 내가 꾸는 꿈을 함께 꿀 수 있는 동반자였다. 친구랑 있으면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팔자 주름이 생기는 것도 감수하고 웃는다. 자꾸 웃게 된다. 우리는 같이 성장하고 싶었고 서로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주었다. 너무 좋은 나머지 친구에게 깜짝 엽서를 써서 보냈다.

“아는 지인이 그림을 배운다던 아뜰리제에 너와 함께 그림을 배우게 되어 너무 기뻐. 우린 둘다 그림 초보지만 열정만큼은 피카소였지. 하얀 도화지에 사각 사각 연필로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너와 나는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웃었지. 그림은 나 혼자라도 배울 요량이었지만 너도 함께 해준다니 기뻐. 각자 말이 없이 몰두할 때도 편안한 사이가 되고 싶었어. 한산하고 아름다운 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던 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함께 그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상상을 했어. 나는 너와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을 때가 행복해. 말을 하지 않아도 너무 편안하고 좋아하는 책에 각자 몰두할 때 평화로움을 느끼지. 같이 햇볕을 받으면서 산책도 하고 새로운 경험을 계획하기도 하지. 혼자서도 너무 잘 노는 너와 혼자서 더 잘 노는 나와 만나서 서로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그런 사이가 너무 행복해.”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마무리하고 바로 우체통에 넣었다. 엽서를 받아든 친구가 풋!하고 웃을 것이 상상된다.      

작가의 이전글 롤모델 따라하기(feat.메타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