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unna Mar 10. 2023

저는 울증 씨와 내연관계입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서 울증 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법적인 남편이 버젓이 있는데도 울증 씨를 알게 되었고 만났습니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속이고 밖으로 돌 때마다 울증 씨는 오히려 정반대로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나를 챙겨주려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난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외로워하지마.” 라고 말했습니다.     



울증 씨는 제가 외출을 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가끔 어딘가로 나서야 할 때, 백 허그 해준다고 안아주는 척했지만, 쌀가마니를 얹은 듯한 무게감을 실어 천근만근 일어서질 못하게 하였고, 모래주머니처럼 내 다리에 매달려 잘 걷지 못하게 했습니다. 

게다가 외출해서도 맘 편하게 즐기질 못하게 했습니다. 갑자기 걷는 걸 잊게 해서 길바닥에 멍하니 서 있게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머리 위에만 검은 비구름이 떠 있었습니다. 깜빡이지도 않는 바짝 뜬 두 눈에서 소나기 같은 빗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눈물이 넘쳐 고개를 숙이면 눈물이 뚝뚝 길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반면, 울증 씨는 자기가 필요하게끔 내가 울거나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이불 속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는 모습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역겨워합니다. 따가운 시선이 칼 끝으로 변해 저를 푹푹 찔러댑니다. 


“게을러 빠져가지고, 쯧쯧”


마음이 억울하고 찢어질 듯 아픕니다.   


  

베개가 젖은 빨래처럼 축축해지면 울증 씨는 또 다정하게 토닥입니다. 빨개진 부은 눈으로 그의 위로를 받으면 이상하게도 저는 점점 기력이 빠지고 웃음이 사라집니다. 울증 씨가 내 옆에 있을수록 산송장 같은 좀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눈치를 채고 말합니다. 


“네가 힘들 때마다 내가 항상 옆에 있어 줬잖아.” 


오히려 생색을 냅니다.    


  

날이 갈수록 울증 씨는 저에 대한 집착이 심해집니다. 울증 씨는 자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의 목숨도 나를 위해 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둘만의 사랑의 결실로 함께 죽는게 어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자.”


라면서 달려오는 전철 앞으로 나를 밀기도 하고,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아래로 뛰어내려 보라고 합니다.  


    

울증 씨와 오래 만나게 될수록 이상하게 그가 편안하고 익숙해졌습니다. 울증 씨가 떠나가 버린 삶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울증 씨가 날 버릴까 봐 불안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얼굴만 내놓은 상태로 깊고 검은 차가운 바닷물에 제 온몸이 담가져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무거운 몸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얼굴까지 물속으로 사라지고 나자 더욱더 깊이 아래로 향해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바닥으로 빨려 내려가면서 저의 머릿속에는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나의 죽음은 어머니의 삶의 가냘픈 버팀목을 발로 차버리고 말겠지요? 평생 고생길 억센 팔자의 어머니를 실신시키고 희미한 건강마저 제가 갉아 먹어 버리겠죠? 엄마를 잃은 어린 두 딸의 정신적 충격은 또 어떠할까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눈물을 보여도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냉정하게 죽음의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남편도 떠올랐습니다. 시가는 며느리를 정신병으로 자살했다고 소문을 내곤 자기 아들이 가엾다고 두둔하며 새로운 혼처를 알아보겠지요. 남편의 입가가 묘하게 올라가는 것이 보입니다. 가해자는 잘살고 피해자만 억울함을 못 참고 죽어가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가 싶지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기만 하고 세상을 잡은 손을 놓고만 싶습니다. 저는 혼자고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보같은 년, 모자라는 년’

‘다들 잘 살 거야, 안녕’     



깊고 검은 차가운 바다의 바닥에 발끝이 닿을 때쯤, 너무나 가여운 작고 어린 나를 봤습니다. 작고 연약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는 가라앉으려는 나를 위로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예쁜 어린 내 모습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1반 명찰을 달고 하얀 블라우스에 팔랑이는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행복했고 세상이 마냥 웃음이었습니다. 원래의 나는 호기심이 많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서서히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는 성인이 된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냥 너야. 가족들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마.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냥 너 자신이야. 너를 죽이는 것도 너고, 너를 살리는 것도 너야. 네가 너를 포기하면 어떻게 해, 누구 좋으라고? 응? ”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내가 나를 정신 차리게 했습니다. 울증 씨에게 빠져 시체처럼 매일 누워있었지만 그건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긴, 어릴 때부터 저는 참 당찼습니다. 골목대장이었고 내 동생들을 괴롭히면 맞짱을 떴습니다. 별명이 웃음보따리라 그런지, 누군가는 제가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해주었고 또 어떤 누군가는 제가 참 재미있다고 말했습니다.     



울증 씨가 와도 이젠 동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 옆엔 나를 사랑하는 내편인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울증 씨가 찾아오면 조금은 힘들지만 일단 울증 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나 책 좀 읽을게.”

독서에 몰두하고 나면 어느 순간 울증 씨는 가고 없었습니다.      



가끔 울증 씨가 찾아오면 귀찮아서 아는 채도 더러 않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커피를 마시고 공부하고 운동하면 울증 씨는 민망한 듯 가버렸습니다. 항상 번호표 1번을 독점했던 울증 씨가 가버리자 다른 감정들에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행복, 즐거움, 감사, 사랑, 기쁨, 여유 등의 긍정적 감정들이 축하 무대를 꾸민다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가려진 커튼이 열리고 무대가 공개되는 순간 저는 나다운 나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내면이 점점 단단해지고 강해져 가는 나에게 어느 날 울증 씨가 말했습니다. 


“자주 못 봐서 섭섭하긴 한데, 나도 너의 소중한 감정이고 네 편인 거 알지? 울고 있는 모습도 좋았지만 웃고 있는 너의 모습도 보기 좋아 보여. 나도 네 것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아.”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모든 감정은 제 편이고 저를 성장시킵니다. 나의 모든 감정은 내가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길 바랍니다. 울증 씨와는 내연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메리칸 스타일로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습니다. 울증 씨에게 한마디하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우울증 씨! 울증 씨를 원망만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나에게 큰 선물을 준 거 같아.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었어. 이젠 내가 소중해. 고마워~”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