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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Jan 20. 2024

외로우면 안된다는 착각

외로우면 안된다는 착각  


   

헤르만 헤세 작  <안갯속에서>    

      

안갯속을 거니는 기분은 이상하다

숲이며 돌들은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들도 서로 볼 수 없다.

모두 혼자다    

 

나의 인생이 아직 밝던 시절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는 안개로 가득하여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가만히 격리하는

어둠을 모르는 사람은

정녕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안갯속을 거니는 기분은 이상하다

산다는 것은 외로운 일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다

모두 혼자다     



 비를 동반한 폭풍우처럼 우울증은 외로움을 챙겨 다녔다. 나 혼자만의 슬픔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나만 아는 외로움을 맛보게 한 후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 점점 혼자가 편한 아이가 되었다.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부터 나는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다녔다. 나와 친한 친구와 그 친구와 친구들이 모여 그룹이 형성됐다. 학교에 가고, 집에 가고, 놀 때, 밥 먹을 때도 항상 함께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희한하게 그룹이 형성됐다. 나와 단짝 친구와 그렇게 이어진 친구들과의 무리 말이다. 여자들끼리 끈끈한 친밀감은 안전한 모기장 같았다. 보이기는 하지만 들어갈 순 없다. 모기처럼 그 관계에 쉽게 끼어들 남자는 없었다.     



술도 잘 먹고 성격이 밝아 대학교 OT 때부터 선배들은 나를 과 대표로 점찍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거절했다. 술자리에서 계속 거절은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부과대를 맡았다. 부모님의 성화에 억지로 선택해 간 대학이지만 열심히 적응해보려고 노력했다. 매 순간 나는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고 세탁기에 잘못 넣어 무거워진 젖은 패딩처럼 나를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잘 놀다가도 퍽 하면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엎드렸다. 몸이 나락으로 꺼지는 듯했다. 중력을 느끼는 초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내가 피곤하다고 해도 술을 먹기 싫어 핑계를 대는 줄 알았다. 나는 술을 잘 먹는 게 아니라 술과 싸우는 거였다.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도 없고 함께 느낄 수도 없는 나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외롭다. 같이 술을 먹어도 내 온몸은 긴장됐다. 나는 늘 끝까지 남아 술 취한 친구들을 챙겨 집으로 보냈다. 술을 궤짝으로 먹는 선배가 있었는데 술병을 팔아 또 술을 먹는 그런 선배조차 골로 보냈다. 술로 나를 이길 사람은 없었다. 술은 나한테 웬수니까 말이다. 술 취한 모습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다. 아빠의 주사를 보고 자란 나는 결코 술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술을 먹고 즐거울 때 나는 주사 아빠가 떠올랐고 이깟 게 뭔데 그렇게 마시고 우리를 힘들게 했나 생각했고, 먹으면 즐겁지도 않고 괴롭기만 한 걸 말이다. 차가운 냉정함과 슬픔이 철벽을 치고 외로움이 나를 둘러쌌다.    


 

외로움의 닻은 태어나자마자 나에게 정박했다. 내가 장녀로 태어나 아직 얘기일 때부터 동생들을 네 명이나 줄줄이 태어났다. 그중 하나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몸이 하나인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더 어린 동생들을 챙길 수밖에 없다. 나는 절대적으로는 애기이나 상대적으로는 동생이 셋이나 있는 어엿한 큰 딸이다.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둔 응석권와 앙탈권은 내가 돌이 되던 때, 동생이 줄줄이 태어나자 쓸모가 없어졌다. 나는 항상 동생들을 잘 챙기고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책임감이 강하고 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사실 슬픈 것도 없고, 우울한 것도 없는 젊은 날들이었다. 즐거운 것도 맞고, 행복한 것도 맞지만 그것들은 늘 공허한 그림자를 길게 빼놓았다. 나를 놓아버릴 수 없게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철벽 방어했다. 나를 놓는다는 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내가 병신 같아 자책했다. 정신을 빼놓는 음악을 틀어놓고 즐겁게 춤을 추는 사람 속에서도 나는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내가 머문 공간은 우주의 블랙홀 같았고 내가 찬 시계는 다른 세계의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동화될 수 없는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뭘 해도 즐겁지 않고 무엇을 해도 내 정신은 멍했다. 산다는 건 매일매일 숙제였다. 절벽에 핀 꽃처럼 매일 바들거리며 살아나가는 숙제를 해냈다.   


   

나의 우울증은 친구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삐걱대게 했다. 나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숨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게 철저히 고립되길 원했다. 우울할 때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울게 된다. 기대고 싶기 때문이다. 응석권과 앙탈권을 버린 이후 나는 목구멍까지 단추로 채운 갑갑한 제복을 입은 듯 표현을 삼켰다. 한 번도 친구들 앞에서 힘들다고, 외롭고 우울하다고 말한 적 없었다.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었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고 나를 오해한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좋다고 다가오는 친구들을 한명 두명 다 떠나보냈다. 오해는 관계를 끊어내기에 충분했다.     



우울증은 우울함의 터널 안에 다른 세계에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처럼 만들어놓고선 외로워 죽으라고 하는 듯했다. 비현실세계와 현실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하이브리드로 진상을 떨어대는 외로움을 처음에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데 우울증은 피하고 싶은 나의 외로움을 자꾸 들추어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어쩔 수 없이 죽도록 연습했다. 인간이 원래 외로운 존재라고 하던데 굳이 일부러 외로움의 도를 닦는 것 같았다. 나밖에 대화할 사람이 없고, 나밖에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냥 온전히 나로 머무는 시간이 한없이 지루하게 이어졌을 뿐이었다.


 남에게 던진 그물을 이제는 나에게로 던졌다. 뭔가 얻어걸릴 게 있을까 싶어서, 외롭지 않고 싶어서 체험처럼 건드린 수많은 관계는 신기루처럼 다 빠져나갔다.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외로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남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 애쓰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이 오면 빠르게 스킵하고 내가 대화하자고 찾아와도 문 앞에 오래 세워두고 지쳐 돌아가게 했을 것이다. 외로움을 피하지 않아야 우울의 긴 터널을 건너 나올 수 있다. 마치 강가에 있는 모가 나고 거친 돌이 시간이 지나 반들반들 부드러운 조약돌이 되듯이 단련된 외로움은 우울증의 큰 그림이었다. 내 인생의 홀로서기를 할 때 외로움에 대한 태도는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외로워질 수 있을 때 첫째, 소중한 관계에 진심이 된다. 소중한 사람들은 흔치 않다. 이리저리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문어발처럼 걸쳐놓는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는다. 스쳐 가는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가지치기를 잘하게 된다. 누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둘째, 고독의 매력에 빠진다. 혼자서 몰입의 시간을 가지는 나를 자주 만나게 된다. 몰입은 나 혼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 누구도 그의 뒷모습을 보고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셋째, 혼자 있어도 빛이 나는 사람이 된다. 나는 내가 만든 성의 군주다. 기대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일구어낸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외로움 속에서도 혼자 서는 사람이다.”라고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이 말했다. 끝까지 외로워 보라. 외로움의 끝에 멋진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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