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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Dec 12. 2023

반려우울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우리 막내 자몽이와 함께 살고부터는 비가 오면 ‘우리 자몽이 산책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한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내 삶에 이미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할 마음 공간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인생을 함께한다는 의미가 있는 반려(伴侶), 다른 사람은 각자 무엇을 반려 삼아 사는지 궁금해진다. 여러분은 무엇을 반려하고 있나요?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공구, 반려 사물처럼 바야흐로 반려 시대다. 여기에 나는 카테고리 하나를 더 보태볼까 한다. 바로 ‘반려감정’이다. 항상 데리고 살던 감정에서 나와 가장 많이 놀던 감정은 우울감이 있다. 반려를 다룬 다양한 이야기가 조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우울을 반려감정으로 삼았다. 늘 우울을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생각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잤다. 내 삶을 온전히 챙겨주는 척하면서도 온갖 못된 짓을 해댔다.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사이였다. 말없이도 오래 서로 들락날락했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처음에는 우울증과 맞서 싸우려고 했다. 나를 해치는 쓸모없고 불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있는 대로 망가지게 해서는 결국은 목에 쇠줄을 감고 죽음으로 질질 끌고 가게 하려는 저승사자 말이다. 책이든 정신과 전문가든 모두 한결같이 우울증을 극복하라고 말했고 극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극복하려고 싸우면 싸울수록 나는 늘 졌다. 편법으로 약을 먹기도 했지만 내 꾀에 내가 넘어가듯 나만 정신만 못 차리고 흐느적댔다. 애당초 싸움 상대가 안 됐다. 이리저리 얻어터져 KO 당한 권투선수처럼 말도 안 되는 체급과 싸워보려고 버둥대다가 결국 아이처럼 울고 마는 게 결말이다.     


 

 유튜브 영상에서 덩치 큰 사자가 아기 때부터 자신을 보살핀 사람에게 강아지처럼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았다. 사자가 두렵다고 외면했다면 새끼 사자는 죽었을지 모른다. 사랑으로 보살핀다는 의미는 이기려 들고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받아도 끌어안고 항상 자식편이 되주는 부모처럼 말이다. 나는 내 안에서 태어난 자식 같은 감정을 야수처럼 무서워하고, 괴물처럼 공포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저 맞서 싸워야 하고 쫓아내야 하는 거부된 감정으로 말이다.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차별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서툰 사람임이 들통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반려는 나를 돌보는 것이다. <반려 공구>의 저자 모호면 작가는 망치·드릴·드라이버·톱과 같은 공구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친구이자 든든한 파트너”에 비유했다. 그는 “일상의 ‘만들기’는 타인을 위한 공예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는 살림”이라고 말했다. 반려를 통해 결국 나를 사랑하고 돌보게 된다. 반려는 나는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무엇이든 반려가 있는 사람들은 일상에 생기 필터를 끼고 산다.      



 만약, 우울증으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이제부터 ‘반려우울’을 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우울증 아니, 나를 잘 데리고 살 수 있다. 나의 소중한 감정으로 여겨주면 된다. 우울증과 사이좋게 잘 지내면 우울증은 언젠가 떠난다. 우울증은 상처가 난 나의 모습이다. 상처가 난 내 모습은 누구도 대신 치료해주지 못한다. 내게로 온 우울증이 나에게 처방된 상처약이다. 상처약을 바르면서 나만의 자기 주도적 감정을 연습하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내가 성장해가면 어느 순간 편지 한 장 남겨놓지 않고 우울증은 떠나고 없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라는 안다고, 여유가 생긴 지금은 놀러 오라고 말해도 자주 찾아오지 않는 자식처럼 군다. 전화도 없다.      



 그렇게 반려 우울을 보내고 한참 뒤 나는 반려견 ‘자몽이’와 함께 산다. 자몽이는 주인을 닮아서 그런지 참 예쁘게? 생겼다. 우울증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지만 펫로스증후군은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그저 함께 지내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된다. 자몽이가 편지 한 장 남겨놓지 않고 떠나게 되더라도 같이 지내는 시간동안 나는 자몽이 덕분에 또 사랑을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 반려 우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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