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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May 26. 2024

맘 편하게 아픔을 누릴 행복

맘 편하게 아픔을 누릴 행복     


     

질병 기지국에는 ‘임시질병 파견사무소’가 있었다. 말하자면 인력사무소 같은 거다. 각종 질병은 여기서 일자리를 구한다. 대부분은 계약직이다. 짧게는 당일치기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 계약기간만큼은 자기 주도적인 질병의 삶을 보장받는다. 즉, 자신의 이름을 걸고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질병들이 계약기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병원과 약국이 ‘김춘추의 꽃’처럼 질병의 이름을 친절하게 읊어주고 질병의 성과를 기록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질병이 일한 대가를 병원과 약국이 부르는 대로 군말 없이 낸다.


      

감기는 7일만 계약했었다. 계약기간을 넘겨 에프터 서비스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자가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7일 만에 일을 끝내고 가긴 글러 보였다. 질병들은 자기 소임을 다하기 위한 비밀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결박 전문 소인국 사람들’이다. 특히, 거인 걸리버를 결박했던 경험이 있는 소인국 사람들이 가장 인기가 좋다. 각설하고, 감기는 소인국 사람들이 디자인할 때 누끼따듯 인간 여자 A의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인간 여자 A의 몸을 끈으로 칭칭 감고 바닥에다 말뚝을 박아 결박했다. 인간이 움직이지 않아 줘야 감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고통스러워하고, 열이 나고, 두통에, 목이 붓고, 몸은 한껏 무거워서 시체처럼 드러누워 줘야 했다. 그런데 이 여자 A는 말이다, 그 결박을 ‘두 두둑’ 다 끊어내고선 기어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무렇지는 않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 준비를 했다. 소인국 사람들은 매일 그녀를 결박하기를 시도했고 그녀는 헐크처럼 결박을 뜯어내곤, 일어나 앉아 출근 준비를 했다. 퇴근 후엔 조용히 집안 일을 했다. 사람들은 그래서 아무도 그녀가 아픈 줄 몰랐다. 감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보지도 못한 채 계약기간이 끝나자 일주일 더 에프터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엄마가 그랬어.’

여자 A의 엄마는 아파도 참고 집안일을 하고 자식들을 돌보고 일도 했다. 엄마가 아프면 아빠는 밥 못 얻어먹을까 봐 짜증을 냈다. 엄마가 아프거나 말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자식새끼들은 집안을 한껏 더 어질러놨다. 엄마의 고통은 철저히 엄마의 것이었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았다. 내색함으로써 얻게 되는 주변의 불편함을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질병이 아무리 주체적으로 지랄을 해대도 엄마에겐 소귀에 경 읽기였다. 온전히 아프기엔 해야 할 것들의 불편함과 그것들로 인한 또 다른 불편함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엄마만 쳐다봤다. 엄마는 아파도 참고 버티고 내색하지 않았다. 엄마는 여자A의 기억 속에서 아픈 적이 없었다. 맘 편하게 아픔을 누릴 권리는 엄마에게 없었다. 가 족같은 가족이었다.      




어리석게도 여자A도 그녀의 엄마처럼 했다. 지독히도 내성적인 그녀는 내색함으로써 얻는 이득과 내색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득을 비교했다. 아프다고 누웠더니 남의 편은 눈을 흘기며 짜증을 냈다. 집안 꼴이 뭐냐며 꼽을 주고 신경질을 냈다. 집안일을 하기 싫어 게으름을 피운다 했다. 그녀가 아프던 말던 자식새끼 굶기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 했고 집안은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치워놔야 했다. 여자A는 이런저런 불편함을 감당할 뻔뻔함이 없었다. 민폐녀가 된 것, 마냥 안절부절못했다. 여자 A는 편안히 아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감기는 에프터 서비스 기간 동안 여자A의 목을 더 붓게 하고 두통을 세게 놨다. 오한이 들어 온몸을 움츠리게 했다. 근육통의 강도도 높였다. 감기는 소인국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여자A를 더욱 철저히 결박시켜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여자A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히 기억되지 않길 바랐다. 평범한 여느 날처럼 그녀를 대하길 바랐다. 자고 나면 사라지는 어제처럼 그 사라짐에 묻혀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주변에서 반응하는 것들의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불편한 감정은 헐크가 되어 소인국 사람들이 촘촘히 놔준 결박을 풀어버렸다. 무겁게 일어나 앉았고 더 무겁게 몸을 일으켜 출근했다.  



   

‘임시질병 파견사무소’는 감기 보고 복귀하라고 했다. 대신 여자A에게 급성 중이염과 돌발성 난청을 파견했다. 계약기간은 두 달이었다. 급성 중이염은 오른쪽 귀에 들어가 극심한 통증을 발사했다. 삐삐-거리는 이명을 끊김이 없는 모스기호처럼 보냈다. 곤히 잠든 그녀가 새벽에 고통으로 깨길 바랐다. 통증은 으름장이고 호통이었다. 통증에 잠이 깬 그녀는 출근을 고민했다. 통증에 넋이 나갈 것 같으면서도 그녀는 또 일어나 출근했다. 감정의 불편함을 우선순위에 둔 그녀도 결국 극심한 통증에 무릎을 꿇었다. 조퇴를 쓰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걸리버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던 소인국 사람들이 자신을 누에고치처럼 만드는 것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이틀을 군말 없이 잠만 잤다. 배냇저고리에 두 팔을 감싼채 곤히 잠든 신생아처럼 편안하게 아픔을 누렸다.     




여자A는 조금만 몸이 괜찮아지면 집안일이 보였고 집안일을 했다. 그리곤 또 아팠다. 가여운 그녀는 까르마 같은 불편함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네 몸이 우선이야! 네 몸을 우선으로 챙겨!’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불편함을 느꼈다. 헌법 제 1004조 1004항이라도 아플 때 편히 아플 권리를 박아놓고 싶었다. 법으로라도 맘 편하게 아픔을 누릴 권리를 준다면 좋겠다. 남의 편이 밥밥 거리면서 눈을 흘기고 설거지를 집어 던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이 방을 폭탄으로 만들어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아플 수 있지 않을까? 힘들게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명상하듯 편히 아프고 싶었다. 아픔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잖아. 똑같이 아파도 받는 대접은 다르다. 뻔뻔함이 과락인 여자A는 맘 편하게 아플 권리조차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질병 기지국의 ‘임시질병 파견사무소’는 24시간 쉴 새 없이 수많은 질병이 계약직으로 파견됐다. 아플 권리가 없는 사람들은 일부 질병을 무기계약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질병을 외상처럼 달아놓고 맘의 불편함을 몸의 불편함으로 대신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웃을 건 웃고 살았다. 여자A는 이제는 아프다면 아프다고 말했다. 아프지 않은 날이 거의 없어도 말이다. 외박이 잦은 군대 간 아들처럼 가족들이 감흥 없이 굴어도, 주변 지인들이 걱정의 말을 해주는 게 불편해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했다. 가끔은 소인국 사람들이 결박을 치면 모른 척 가만히 있어 주었다. 적어도, 온몸이 종합병원인 여자A에게는, 들숨 날숨 조차 만성피곤의 오락가락인 여자A에게는 맘 편하게 아플 수 있는 게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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