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똥철이 알지?”
대화를 하려 했다. 여러모로 아쉬울 것이 없는 남편은 나와 소통하는 것에 인색하고 필요성을 모른다. 일상의 소소한 대화로 이루어지는 친밀하고 맥락 있는 관계가 누락된 채로 허울 좋은 연식만 늘어났다. 방치되어 엉킨 실타래 속에서 그와 내가 이어진 실의 처음과 끝을 찾아 잡고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치고 들어오면 이상하게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이 솟아났다. 관계가 강간당한 기분이었다. 일상이 음소거이고 소통의 데이터가 없기에 알고리즘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눈치 없는 호기심은 달달한 진딧물의 똥꼬를 물었다. 인내심 없고 성질 급한 남편이 입을 닫아버리기 전에 말이다. 넓은 아량으로 소소한 콘텐츠 하나 만들어보자며 “응”하고 대답했다.
“똥철이가 히로시마에 놀러 갔는데, 출국 전 공항에서 허리 디스크 터져서 응급실에 실려갔대.”
들어는준다는 식으로 비싸게 굴고 싶었는데 그만 빵 터져 버렸다. 우울해서 울다가도 웃긴 영상을 보면 웃듯이, 속은 불만인데 멋대로인 웃음이 그만 그런 마음을 보자기 싸듯 덮어 버렸다.
타국에서의 응급상황이니 심각하고 걱정되는 일이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다니는 가정적인 똥철이는 이번에도 싼 여행티켓을 득템 하고선 히로시마로 떠났다. 취미가, 저렴한 비행기표를 검색하는 것이라던 똥철이는 “인생 뭐 있어! 즐기면서 사는 거지!” 하면서 현재를 중요시했다.
똥철이는 입만 열면 찰진 유머로 싸대기를 촬삭 때려주는 웃긴 남자였다. 아무리 우울해도, 슬퍼도, 피곤해도 혓바닥으로 겨드랑이를 살살 공격당하면 당해낼 장사가 없다고 본다. 똥철이를 만나면 눈가의 주름 걱정을 해야 한다. 옥수수를 잘 터니 미인을 만나 결혼도 했다. 게다가 능력 있고 머리도 좋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닥쳐도 똥철이는 자신만의 기발함으로 잘 해결할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남편은 과정이 아닌 늘 결과를 통보하는 남자였기에 그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간 보듯 말을 거는 남편이 꼴비기 싫었지만 농담으로 화답했다.
“왠 히로시마? 거기 방사능 피폭 맞으러 간 거야?”
“ 몰라, 싸게 나와서 갔대. 출국 비행기표를 아깝게 날렸지 뭐야, 새로 비행기표를 예매해 달라고 전화 왔더라고, 급하게 항공권 끊어줬어. 난리도 아니었지”
다행히 치료를 잘 받고 장애인용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녔단다. 똥철이가 휠체어를 탄 모습을 상상하니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은 자신이 한 말에 내가 웃음을 못 참는 모습을 보니 의기양양해졌다. 과거에 똥철이는 장애인용 휠체어로 큰 웃음을 준 적이 있었다. 똥철이네와 함께 홍콩으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디즈니랜드를 갔었는데 똥철이네 어린 딸내미는 걷는 게 힘들다고 징징거렸다. 갑자기 사라진 똥철이는 어디서 장애인용 휠체어를 구해와 딸을 앉혔다. 휠체어를 밀고 가는 똥철이에게 외국 사람들은 친절히 대했고, 양보했었다. 진실을 아는 나와 남편은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큭큭 거리며 웃었다. 똥철이는 알았을까? 딸을 태웠던 그 휠체어에 몇 년 후 본인이 앉게 됨을 말이다.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불행은 웃음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나를 안도하게 하려는 수법일까? 똥철이의 소식을 듣고 웃어대던 나도 며칠 후 여행지에서 부상을 당했다. 1박 2일로 떠난 부산에서였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균형을 잃고 발을 접질렸는데 뼈가 부러졌다. 발은 퉁퉁 불어났고 바닥에 닿을 수가 없었다. 부산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일정 중 내린 곳에서 그랬다. 그날 저녁에 기차로 집으로 올라갈 예정이었기에 버스 안에서 얼음찜질을 하며 버텼다. 응급상황이었지만 나 때문에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망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똥철이 소식을 들으며 웃어대던 나는 그 일이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싸한 느낌이 들었는데 친절한 불행씨는 미리 예고를 해주었던 것일까?
남편의 입은 사고를 물어다 주는 새였다. 불행은 어떻게든 친절하게 나에게 다가올 일을 예고해주려고 했었나 보다. 영화도 스포가 있는데 인생도 스포가 없을까? 살다 보면 알 수 없는 복선 같은 게 깔리곤 한다.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이미 알았지만 뒤늦게 깨닫는다. 싸한 느낌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이유 있는 친절의 탈은 탈을 부르듯 불행씨는 친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