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다양한 증상 중 하나가 자살 충동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아서, 우울증은 지구상에서 가장 끔찍한 질병 중 하나가 됐다. 우울증은 전쟁, 테러, 가정폭력, 폭행, 총기 범죄 등의 폭력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살을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자살 공화국인 대한민국답게 신문을 볼 때마다 자살 관련 기사를 매우 자주 접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11.1명인데 한국은 23.6명으로 평균을 크게 웃돈다. 세계 탑을 찍었다. 이런 1등은 하고 싶지 않은데 2023년 6월에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3년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당분간 계속 세계 1위 자리를 이어갈 것 같다.
우리나라는 매년 얼마나 자살했을까? 자살예방백서에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한국 자살자 수가 나와 있다. 비공식적인 숫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 같다. 2021년에는 1만 3,352명이 자살했는데 2020년에 비해 157명이 더 늘었다.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1.2%가 증가한 것이다. 하루 평균 30.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그럼 연령대별 자살 비율은 어떨까? 80세 이상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문제는 젊은 층의 자살도 점점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7명으로 OECD 평균 6.4보다 1.8배나 높다. 작년 한 해만 해도 경기 3,117명, 서울 2,009명, 부산 906명, 경남 878명 등이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되었다.
각종 매스컴에서 늘어나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률을 보도해도 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지금도 우울증을 가볍게 생각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이나 걸린다고 치부한다. 우울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자살률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친구, 지인이 겪고 있는 문제다.
나도 우울증일 땐 심하게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살았다. 20대엔 매일 어떻게 죽으면 좋을까를 연구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전철이 나를 빨아 당기는 것 같았고,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에 뛰어들고 싶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기도 했다.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화병까지 생겼다.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배우자는 비난과 멸시, 조롱까지 첨부하여 우울증의 판을 더 키워놨다. 아이가 있어서 그나마 행복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자살 충동이 생기면 아이도 뭐도 눈에 뵈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배가 아파 화장실이 급하면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꽉 막힌 도로에 갇혀 혼자 차 안에서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는 것과 같았다. 불안과 초조한 그 순간에도 생각 많은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자살 충동이 들 때마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일까? 억울했다. 살인자들이나 사기치고 다니는 사람들은 철판 깔고 잘 사는데 혼자 바보처럼 죽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죽으면 끝이지 뭐.’하고 죽을 생각만 하다가 언젠가부터 죽고 난 후도 생각해 보면서 조금씩 자살 충동을 줄여 나갔다. 일단, 죽고 난 다음 수치스럽게 발가벗거져 산 사람들에 의해 내 몸뚱이가 2차 가해가 되는 것이 싫었다. 말하자면 개죽음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떠난 후 내 새끼들이 다른 사람들 손에 이리저리 맡겨지면서 찬밥 신세가 되는 게 마음이 아팠다. 나부터도 우리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데,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이 세상 모두일 텐데 차라리 살아서 고문을 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다 큰 성인도 부모님이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는데 내가 가족들에게 이런 고통을 감히 주어야 할까? 남겨진 사람들은 또 뭔 죄란 말인가? 솔직히 혼자 떠나버리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과 나의 양심은 늘 충돌했었다. 이성복의 “꽃피는 시절”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위인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다.
“꽃피는 시절” 이성복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 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어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위의 시를 읽으면서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자살 유족이 된 사람들은 평생 가슴속에 한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주변 사람이나 사회로부터 2차 가해까지 받는다고 한다.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 취급에다가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고통을 받는다. 2023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자살 유족의 83.3%가 ‘사별 후 우울 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게다가 59.5%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도 한다. 자살 유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과 비교하면 8~9배나 높다. 남성 유족 자살 위험은 일반인 대비 8.3배, 여성 유족 자살 위험은 일반인 대비 9배나 높다. 자살 유족은 가족을 잃은 직후부터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대부분 자살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만큼, 자살 유족은 일반유족보다 더 큰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지키지 못한 죄책감까지 더해 평생 자신을 고문하듯 살게 된다. 자신의 자살을 남아있는 가족에게 고대로 인수인계하는 꼴이다. 죽으면 후회도 못 한다.
우울증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우울의 긴 터널을 혼자 외롭게 지나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주 작은 불빛조차도 큰 위로가 된다. 남들은 지나치는 그 불빛을 쫓아서 걸어갈 이유가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늦은 밤에 귀가할 때 우리 집 아파트 거실이 혼자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위로가 된다. 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집안의 불을 자주 꺼놓으셨던 아버지도 내가 밤늦게 들어올 때면 거실은 늘 환하게 켜 놓고 주무셨다. 표현에 인색한 남편도 아버지랑 똑같이 가족이 모두 올 때까지 거실의 불을 환하게 켜놓는다. 현관에 들어올 때 밝은 집안은 꼭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작은 것에도 위로받고 행복해할 줄 아는 나는 정말 죽고 싶은 것일까?
자살하고 싶다는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결정일까? 이 세상에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자살하고 싶다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면서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에게 SOS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살하고 싶게 만드는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이다. 살고 싶다고. 우리는 살고자 하는 생존본능을 태초부터 탑재하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강력한 자살 충동은 우울증이 내린 결정이지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 충동이 느껴질 때마다, 따뜻하게 내 손을 누가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혼자였던 나는 손이 두 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왼손과 오른손을 잡고 마치 누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나를 위로하고 달랬다.
작은 것에도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잘것없는 것에도 소중함을 찾아내고 남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했던 사람이라면, 선행을 베풀 때 설렜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자살 충동에서 버틸 수 있다. 뇌에서 자살하고 싶게 가스라이팅을 해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충동은 말 그대로 충동이다. 금방 타올랐다가 금방 꺼져버리는 불꽃이다. 그럴 때마다 한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해도 좋다. 어쩌면 더 강력히 업그레이드하려고 스스로 변태를 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살하고 싶은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가장 큰 장애를 넘긴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