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짐승의 굴
#3.
그날,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딱 중앙에 있는 시간, 다니엘은 그가 자신의 신에게 기도하는 기도방의 창문 너머에 평소라면 보이지 않았을 궤도로 드론이 날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커튼을 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저 정도로 준비했다면 커튼으로도 막을 수 없을 거고..’
또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성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노예였던 그의 어린 시절부터 죽으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으니까. 창가 너머로 요 한 달 사이부터 들리기 시작한 사이렌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기도를 마치고 그가 업무를 보는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화성 치안 유지군이 그곳에서 그의 보스의 서명이 적힌 문서와 함께 그를 맞이해주었다.
“피켈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술에 취한 채로 있던 피켈은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며 그가 그의 연인들과 있던 연회장으로 들이닥친 그의 부하들이 내민 각서를 보고서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일의 발단은 이러했다. 여느 때처럼 열심히 술을 마시고 있던 어느 날, 그의 부하들이 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계획이라며 전달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들은 정오에 사이렌이 울리면 누구든지 10분간 울리는 사이렌이 끝나기 전까지 집 앞에 나와 피켈의 이름이 적힌 깃발에 경례를 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이었다. 이런 애들 장난 같은 계획이 술에 잔뜩 취해있던 그의 귀에는 권력을 장악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위상을 위해서 그의 부하들이 수고롭게 마련한 아주 좋은 계획으로 들렸고, 나중에 다니엘이 그의 앞으로 끌려왔을 때 그의 부하들이 내민 종이 쪼가리를 보고서 그는 망연자실했다. 그냥 포고한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날 잔뜩 술에 취한 나머지 이 화성의 규율상 그 스스로도 함부로 취하할 수 없는 단계의 명령으로 승인한 것이었다. 종이 싸인 옆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스마트폰에 홍채 인식과 지문으로 된 승인 명령서까지 그의 기분도 모르고 밝은 화면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미친놈은 대체...”
무슨 깡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니엘은 그를 다 알고서도 한 달 내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 빌어먹을 자신의 신에게 기도하는 시간이라는 거겠지. 그는 본래 그런 남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도 다 알고서 일부러 시간을 정오에 맞춘 것이 틀림없었다. 근무를 나오든 자택 근무를 하든지 간에 다니엘은 그 시간에는 기도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원래도 그의 총애를 받는 다니엘이 눈엣가시인 눈치였는데, 요즘 들어 공식적으로 이인자 자리에 오르니 본격적으로 견제를 받은 것이다. 한숨을 푹 내쉰 피켈은 앞에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실험실 지하에 있는 불법 격투장으로, 실험체들끼리나 실험체들과 사람들의 싸움을 붙이는 곳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실험실을 후원하며 시작한 곳이었는데, 이곳에 자신의 오른팔을 가두게 될 줄이야. 이 앞에 있는 문은 그중 가장 악명 높은 머리 셋 달린 사자 키메라의 방문이었다.
#4.
방의 내부는 생각보다 꽤 컸다. 전에 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관람객이 많다 보니 인테리어랑 증축 공사를 한 모양이었다. 리클라이너부터 시작해서 음료 자판기까지. 편안한 관람을 위한 기구들이 이곳저곳에 구비되어 있었다. 피켈은 습관적으로 음료를 한 잔 뽑으려 손을 뽑았다가 이내 멈추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다니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관람 온 것도 아니고..”
나지막이 중얼거린 그는 주변을 쓰윽하고 돌아보았다. 평소라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들어왔을 방안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무래도 이 안락한 관람실 옆에 있는 저 ‘무대’의 커튼을 걷으면 있을, 다니엘의 시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리라. 아니, 시체도 남지 않고 머리 셋 달린 사자 키메라 한 마리만이 오늘따라 조금 적은 먹이에 입맛을 다시며 누워있을 것이었다. 사실 이미 확인을 했다면 진작 확인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그 장면이 눈앞에 실제로 펼쳐질 것이 두려워서 그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앞으로 조그마한 스크린이 하나 떴다.
-피켈 님. 프론트입니다. 관리자 세 분 현재 도착하셔서 연락드립니다. 미쉘.
아까 누군가 오면 말해달라고 그가 부탁해 놓았던 프런트 데스크의 A.I 미쉘이었다. 피켈은 심호흡을 하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제는 마치 슈레딩거의 사고 실험에서처럼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볼 차례였다. 혹시라도 늦게 확인했다가 그의 부하들이 들이닥쳐서 그가 망연 자실 한 표정으로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그냥 이제는 다니엘이 죽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빨리 이곳을 나가버리는 게 답이었다. 그는 잰걸음으로 보통은 관리자가 컨트롤하는 중앙 컴퓨터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버튼과 공중에 떠 있는 스크린이 있었지만, 그가 눌러야 할 버튼은 단 한 개였다. 그는 두 눈을 앞에 있는 벽에 고정시킨 상태로, 자기도 모르게 사납게 입술을 깨물으며, 그리고 있는 힘껏 버튼을 누르며 외쳤다.
“살아있냐, 다니엘! 너의 그 빌어먹을 신이 널 살렸냐, 다니엘. 제발 대답해라. 제발..!”
-분리를 해제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5,4..
그의 거친 목소리와 다르게 시스템은 너무나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작동되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건너편의 화면이 나타나자 그는 잠깐 멈칫 한 뒤에 사태를 파악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곳에는 키메라의 머리들을 번갈아 쓰다듬으며 한 장발의 젊은 남자가 지루한 표정으로 함께 누워있었다. 그는 벽이 열린 뒤 몇 초 후 피켈과 눈을 마주치며 반가운 표정으로 뭐라고 말을 걸었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피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피켈이 있던 방문이 열리며 중년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피켈님, 이른 아침부터 이런 누추한 곳에..”
“저 반동분자가 있는 곳까지 어인 일로.”
“오신 김에 옆 방도 구경하고 가시지요.”
각자 저마다의 말을 하며 들어오던 남자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서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버렸다. 피켈은 그들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차분하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문가에 대고 말을 했다.
“거기. 누구 있나?”
그러자 아까 문 앞까지 피켈을 인도하였던 문지기가 들어와 그에게 경례했다.
“다른 인원을 불러서 다니엘을 저 방에서 당장 꺼내고. 이 셋을 저곳에 넣도록.”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피.. 피켈님! 이게 무슨...!”
피켈은 그들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읇조렸다.
“대역 죄인이 죽지 않은 걸 보니 아무래도 저 사자가 배가 불러서 그런 것 같은데, 그걸 확인해야겠어서 말이야. 그대들이 대신 들어가 줘야겠소.”
“피켈님! 저희들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는 건...!”
“살려주십시오. 피켈님!”
“그래서 다니엘은 한 번 들어갔지 않소? 그대들도 한 번 들어갔다 오구려. 공평하게. 그러고 나면 꺼내주리다.”
그 말을 끝으로 피켈은 방에서 나와 서둘러 뒷문 쪽으로 갔다. 뒷문에 도착하자 이미 다른 인원들에 의해서 부축받은 다니엘이 나오고 있었다. 피켈은 그에게 뛰어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잠시 뒤, 아까 피켈이 홀로 걸어왔던 그 긴 복도를 거슬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두 남자의 뒤로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셋은 인간의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처럼 들리는 셋은 굶주림을 참지 못한 야수들의 것이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