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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아이언 Apr 17. 2022

#결혼이야기. 그렇게 말고 뒤돌아서서. 아니그게 아니라

문제의 시작은 소변을 보러 급히 들어가던 나를 아내가 붙잡던 순간이었다. 

반쯤 열린 화장실문에 내 반만 보이는 얼굴을 보고 아내는 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 라고 얼렁뚱땅 말하면서 급히 문을 닫고 볼 일을 봤다. 

장마철 개천다리까지 넘실넘실 거리는 수준까지 올라온 방광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나는 지금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 

ⓒtwitter Qudckarhk

나도 이런 장면의 이야기는 들어봤다. 한 가정에 여자가 세 명, 남자가 한 명이 사는 집에서는 왕왕 있는 일이라고. 즉, 말하자면 아빠와 아내 그리고 두 딸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세 여자들이 앉아서 소변을 보고 한 남자가 일어서서 소변을 보는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 

일어서서 보는 한 사람 때문에 화장실의 위생이 피폐해지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결속단체.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하고 듣다가도, 세 여자의 계속되는 융단폭격같은 논리를 듣고 있으면 이내 그들이 주장하는 이 노란색 불결한 잔해에 대해서 일부 수긍이 가기도 한단다.


일어서서 소변을 보면, 알게모르게 사방에 소변이 튀고, 이것이 화장실 묵은 냄새의 원인이고 곰팡이가 서식하기에 좋은 공간이며 바이러스의 진앙지(?)가 된다는 그런 논리. 


그런 아빠들은, 자신도 '그래, 이런 얘기 어디서 들어본거 같아' 라고 생각하면서 

"그래 알았어! 앉아서 보면 될거아냐!' 하면서 뚱땅, 대답하게 된다.  어차피 그가 소변을 볼 때, 문을 닫으면 안의 상황은 모르겠지, 라는 꿍꿍이 속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김부장만 겪을 줄 알았던 이런 사건이 나에게도 닥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마음으로 건성의 대답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성향의 남편이기에 

굳이 아내의 권력에 도전하지 않고 그냥 시키는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알았어, 앞으로는 앉아서 볼 일 볼게. 근데 그거 알아? 어디서 봤는데, 이런 앉은 자세가 남성에게는 좋지 않다고 하던거 같은데.. 

전립선에 무리가 가는 자세라고도 한 것 같고... 에이 뭐, 그래도 냄새 안나고 화장실이 청결하게 유지 된다면 그정도의 남성성 희생은 받아들이지 뭐." 


이렇게 말하면, 아내가 한 발 물러설지 알았는데, 아내는 단호했고, 또 예상 밖의 요구를 덧붙였다.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이어서 놀랄겨를도 없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 앉아쏴." 


왜 그때 나는 '북극에 사는 동물은 펭귄이지!' 라고 말했던 한 친구녀석이 생각났던 것일까. 

잘 알고 있는 대상자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이면서도 잘 모르는 상대방을 고려해보면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긴 둘 다 너무 추운 곳인데 왜 펭귄은 북극이라고 못살겠어.' 라는 느낌이다. 


아내의 요구인 '뒤로 돌아서 앉아쏴'를 곱씹어보면 

나의 상황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요구인데, 한편 아내의 머리로는 굳이 생각 못 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갑자기 소변을 앉아쏴야하는 것도 받아 들이기 힘든데, 뒤로 돌아서 앉아서 볼 일을 본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인가하고 놀랍긴 하다. 


'저런 자세가 인체공학적으로 가능한가? 바지의 섬유탄력성 측면에서 가능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명백하게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0.25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성향의 남편이기에 일단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이 자세가 가능할리가 없지! 바지에 걸려서 제대로 앉을 수는 있을까? 하면서 아내의 말을 비웃으려는 의도로 시도해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게 된다. 


바지를 대변 볼 때처럼 발목 복숭아뼈 밑으로까지 내리면 저 자세가 나오는데 요구되어지는 무릎의 각도가 가능해진다. 달리는 말에 거꾸로 돌아앉아 뒤를 보고 달리는 모습의 그 자세가 나온다.


와, 이 얼마나 신박한 자세인가. 이 자세는 세상의 모든 편견과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세다. 

마치 우주왕복선에 탑승한 우주비행사가 천장을 향해 설치된 90도직각 의자에 탑승한 자세와 견주고 싶다. 

다른 세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다른 해결책이 나온다는 그 어떤 미국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의 말이 사실인가 보다. 


새로운 세상과 자세를 만난지 삼일 째,

나는 여전히 말을 뒤로 탄 모순적인 기마자세로 소변을 본다. 첫 날은 몰랐지만, 이 자세는 유년시절의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바로 '말뚝박기' 의 향수. 말뚝박기의 첫 기수로 올라 상대편 술래와 가위바위보를 하던 그 시절. 짧은 볼 일을 보고 물을 내리러 손을 변기레버로 가지고 가다가 대변레버와 소변레버의 엇갈림의 모습이 흡사 가위같아 보여서 나는 소리없이 "주먹!"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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