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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원 Nov 29. 2024

살아남은 살인자

…익숙한 병원의 천장이다.

죽으면 가장 후회했던 때를 보여준다던데,

아마 그때인가 보다.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퍽이나 들겠다.


“젊은 녀석이 거기는 또 왜 뛰어든 거야”

”그럼 전…“


모든 소리가 낯설다.

신생아가 태어난 날처럼.

아니지, 어쩌면 오늘 죽었으니까

세상의 소리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뇌파의 소리ㅡ 뭐 그런 거.


뭔가 제멋대로인 훈계가 끝난 뒤 두 경관은

천천히 돌아갈 준비를 했다.

“슬슬 가도 될 것 같습니다”

“학생, 이 분한테 잘해드려~

학생 뛰어든 거 신고도 제일 먼저 해주시고

병원까지 따라와서 보호자도 해주셨어

하여간 복도 많은 놈이 거긴 왜 뛰어든 거야ㅡ.

뭐 됐고 잘 살아라.

우리도 이만 가세“

“그럼 저흰 가보겠습니다”


그에게 죽어서 듣는 덕담은

살아있을 때는 왜 한마디도 듣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매몰되게 했다.

그의 눈카풀을 아래로 잡아당기면서.


그런데,

보호자라니.

난 그런 사람 없을 텐데…


그는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켜 세웠고,

그 “보호자”는 인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좀 괜찮아요?”


뭐지.

가장 후회하던 순간으로 온 게 아니었나.

아ㅡ 알 것 같다.

사람이 덕을 많이 쌓고 죽으면

요단강 건너기 전에

가장 원하던 순간도 보여준다고 했던가.

그래서 경관이 그런 말을 했나….


그는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게 틀림없다.

아직도 자기가 연옥에 있는 것으로 아나보다.

그래서 그 보호자가 전한 말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뭐,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만.

요약하자면,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한강에 입수할 때,

다리부터 쏙 들어가 다친 곳도 거의 없고,

강 물살에 휩쓸려 가다가 운 좋게

다리 기둥에 부딪혀 빨리 구조할 수 있었다는ㅡ

그런 내용이다.

확실히 운이 좋은 건 맞나 보다.


“뭐 그렇게 된 거니까,

나중에 밥이라도 사요“


그는 얼떨결에 고개를 나지막이 끄덕였다.


“많이 안 다쳐서 조만간 퇴원한다니까

출근이나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요. “


“…”


“휴…”

그는 보호자와 침대에 앉아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보호자가 운을 뗀다.


“걱정 많아 보이던데,

또 살다가 힘들면 저한테 하소연이라도 해요“

그리고 아기자기한 손으로 포스트잇에 뭔가 적어

내 핸드폰에 붙였다.


“나중에 힘들면 연락 줘요“

가벼운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제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는 그저 황홀함에 가득 차 있었다.

첫째로,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

둘째로,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따뜻한 위로를 받은 것.

둘째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가

그 감동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누웠다.


“7시…6분.”

천사가 잠시 머물다 갔음에 그저 감사하며,

눈을 감는다.


..

….

……

그리고 그는 아주 오래전 꿈을 꾸었다.


“아빠.

평생 고생만 한 우리 아빠.

내가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그곳엔 울먹이며 임종을 지키고자 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

그러나 아비는 처음으로 그 소년에게 차갑게 대했다.

몸도, 말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그치…..?“


떨리는 목소리.

익숙하다.

이 꿈은 내 지난날의 업보이리다.

김진우.

아니, 임채연의 업보다.


아비는, 그의 반려자가 떠난 뒤 15년간.

그래, 15년간

혼자서 소년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그러나 그가 시시각각 죽어감을 느껴

소년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말해도 돌아오는 답은 이러했다.

“아 저 오늘 과미팅있잖아요ㅡ.“

“아니 아빠 나 오늘 진짜 중요한 약속 있다니까?”

“굳이 지금? 나중에 만나. 그때 제대로 얘기하자,

나 피곤해.“

그는 만개하는 벚꽃을 지게 하는

얄밉고 추잡스러운 봄비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다가,

세상이 끝나는 날에서야 겨울비를 내릴 수 있었다.

그 소년의 무관심에 의해 고독사 당한 아비.

그에 대한 임채연의 업보이리라.


그 소년은,

아비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서야 그의 사랑을 고백하고

사죄했다.

“너는 아무 잘못 읎어…

다 이 못난 아비 잘못이다…“

아마 아비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

그러나 아비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갔다.


처음으로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유언하나 말하지 못한 아비의 흔적이라도 남기고자

그의 아비의 성으로 고치고, 이름도 바꾸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아비에게,

어쩌면 찬란했을 아비의 죽어버린 세상에

벚꽃을 피워내주고 싶었다.

..

“안녕하세요,

CW지원자, 0831번.

김진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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