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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병원의 천장이다.
죽으면 가장 후회했던 때를 보여준다던데,
아마 그때인가 보다.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퍽이나 들겠다.
“젊은 녀석이 거기는 또 왜 뛰어든 거야”
”그럼 전…“
모든 소리가 낯설다.
신생아가 태어난 날처럼.
아니지, 어쩌면 오늘 죽었으니까
세상의 소리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뇌파의 소리ㅡ 뭐 그런 거.
뭔가 제멋대로인 훈계가 끝난 뒤 두 경관은
천천히 돌아갈 준비를 했다.
“슬슬 가도 될 것 같습니다”
“학생, 이 분한테 잘해드려~
학생 뛰어든 거 신고도 제일 먼저 해주시고
병원까지 따라와서 보호자도 해주셨어
하여간 복도 많은 놈이 거긴 왜 뛰어든 거야ㅡ.
뭐 됐고 잘 살아라.
우리도 이만 가세“
“그럼 저흰 가보겠습니다”
그에게 죽어서 듣는 덕담은
살아있을 때는 왜 한마디도 듣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매몰되게 했다.
그의 눈카풀을 아래로 잡아당기면서.
그런데,
보호자라니.
난 그런 사람 없을 텐데…
그는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켜 세웠고,
그 “보호자”는 인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좀 괜찮아요?”
뭐지.
가장 후회하던 순간으로 온 게 아니었나.
아ㅡ 알 것 같다.
사람이 덕을 많이 쌓고 죽으면
요단강 건너기 전에
가장 원하던 순간도 보여준다고 했던가.
그래서 경관이 그런 말을 했나….
그는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게 틀림없다.
아직도 자기가 연옥에 있는 것으로 아나보다.
그래서 그 보호자가 전한 말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뭐,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만.
요약하자면,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한강에 입수할 때,
다리부터 쏙 들어가 다친 곳도 거의 없고,
강 물살에 휩쓸려 가다가 운 좋게
다리 기둥에 부딪혀 빨리 구조할 수 있었다는ㅡ
그런 내용이다.
확실히 운이 좋은 건 맞나 보다.
“뭐 그렇게 된 거니까,
나중에 밥이라도 사요“
그는 얼떨결에 고개를 나지막이 끄덕였다.
“많이 안 다쳐서 조만간 퇴원한다니까
출근이나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요. “
“…”
“휴…”
그는 보호자와 침대에 앉아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보호자가 운을 뗀다.
“걱정 많아 보이던데,
또 살다가 힘들면 저한테 하소연이라도 해요“
그리고 아기자기한 손으로 포스트잇에 뭔가 적어
내 핸드폰에 붙였다.
“나중에 힘들면 연락 줘요“
가벼운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제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는 그저 황홀함에 가득 차 있었다.
첫째로,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
둘째로,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따뜻한 위로를 받은 것.
둘째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가
그 감동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누웠다.
“7시…6분.”
천사가 잠시 머물다 갔음에 그저 감사하며,
눈을 감는다.
..
….
……
그리고 그는 아주 오래전 꿈을 꾸었다.
“아빠.
평생 고생만 한 우리 아빠.
내가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그곳엔 울먹이며 임종을 지키고자 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
그러나 아비는 처음으로 그 소년에게 차갑게 대했다.
몸도, 말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그치…..?“
떨리는 목소리.
익숙하다.
이 꿈은 내 지난날의 업보이리다.
김진우.
아니, 임채연의 업보다.
아비는, 그의 반려자가 떠난 뒤 15년간.
그래, 15년간
혼자서 소년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그러나 그가 시시각각 죽어감을 느껴
소년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말해도 돌아오는 답은 이러했다.
“아 저 오늘 과미팅있잖아요ㅡ.“
“아니 아빠 나 오늘 진짜 중요한 약속 있다니까?”
“굳이 지금? 나중에 만나. 그때 제대로 얘기하자,
나 피곤해.“
그는 만개하는 벚꽃을 지게 하는
얄밉고 추잡스러운 봄비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다가,
세상이 끝나는 날에서야 겨울비를 내릴 수 있었다.
그 소년의 무관심에 의해 고독사 당한 아비.
그에 대한 임채연의 업보이리라.
그 소년은,
아비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서야 그의 사랑을 고백하고
사죄했다.
“너는 아무 잘못 읎어…
다 이 못난 아비 잘못이다…“
아마 아비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
그러나 아비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갔다.
처음으로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유언하나 말하지 못한 아비의 흔적이라도 남기고자
그의 아비의 성으로 고치고, 이름도 바꾸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아비에게,
어쩌면 찬란했을 아비의 죽어버린 세상에
벚꽃을 피워내주고 싶었다.
..
…
…
“안녕하세요,
CW지원자, 0831번.
김진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