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대신 살아간다는 것은
“환자분? 이제 퇴원하셔도 좋아요“
사색에 잠겼던 잠깐의 슬픈 회상을 뒤로하고,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았다.
일요일 아침해는 이제 막,
세수를 마치고 빛나는 머리칼을 뽐내며 등장하고 있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떴다.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다시 사색에 잠긴다.
창문 너머에 보이는 으리으리한 여의도의 감옥들.
그리고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는 탈옥수이고,
경찰차에서 다시 송환되는 비참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다.
많은 것을 잃은,
그리고 많은 것을 깨달은 눈동자로,
저 창너머의 풍경이 교도소로 다시 변할 때까지
그 일분일초 일각까지도 놓치지 않고 담아둔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자유를 원해 날갯짓 한, 한 닭의 오만.(이카루스)
그 죄의 심판을 기다리며 꾸는,
내 영혼이 연옥에 도달한 꿈이다.
누군가의 기도 없이는 천국에 도달할 수 없는.
그 누구의 관심도 없이 외로움에 사무쳐 쓸쓸히 죽어가는.
그는 외로움을 못 이겨 자유와 사랑을 원해 날갯짓했으나,
도리어 그것이 그를 고독한 독방에 가두었다.
그는 아무리 많은 기도를 받아도 결코
그분의 나라에 갈 수 없을 것이다.
첫째, 그는 신을 저버렸다.
단순히 배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존재에 의심을 그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었다.
그리고 그를 회의했다.
둘째, 그는 아비의 꿈을 이루는 삶의 결말을 망쳤다.
그는, 이미 죽은 아비를
비참한 모습으로 두 번이나 죽인
미치광이 살인자다.
셋째, 무엇보다.
그는 그의 삶을 스스로 져버렸으니
그 죄는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그 크기는 측량불가함이 바이없다.
그래서 그는 현실이라는 연옥에 투옥됐다.
그 원죄를 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극악무도한 그의 행실의 대가를 평생토록,
톡톡히 치르기 위해서이다.
“다 도착했어요. 17,100원입니다 손님.”
“여기요”
나는 왠지 들뜬 마음으로 선뜻 카드를 건넸다.
노잣돈은 자신의 가치가 매기는 돈이 아니던가!
억지로 끌어올려 겨우 17,000원에 도달했던 내 가치는,
이제 100원이나 훌쩍 넘겼다!
“통”
택시문이 닫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음ㅡ 좋다
이 썩어 문드러지는 생명의 냄새.
코를 찢으며 불어오는 파랗고 타는 듯한 내음.
분명 그제와 다름없는 그 냄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른가보다.
어제 겨울비가 내려서 그런가,
슬프게 진동하는 흙내음도 섞여있는 듯하다.
그제와 사뭇 다른 나의 찢어지고 피 묻은 정장차림.
그 덕에 나의 몸은 더욱 무겁다.
ㅡ그래도 그는 만족하며 기꺼이 그의 독방으로 들어간다.
마치 자유를 알게 되었다 착각하는 사형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