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을 함께 했던 동생이자 자식이자 친구를 잃고,
어렸을 때는 곧 잘 안고 잤지만 자는 방과 침대가 정해지면서 꼭 그 자리에서만 잠을 잤고, 침대로 데리고 올 때면 오래 못 있고 꼭 돌아다녀야 하는 성격이었다.
어딘가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싫어하는 강아지였다.
용이는 집안 곳곳 부엌, 이방 저 방을 돌아다니다가 꼭 내 방문을 앞 발로 밀어 자기가 들어갈 틈을 만들고 문 앞에서 지그시 쳐다만 보거나, 몸 반만 들어온 채로 있었다. 그리고 부를때면 꼭 들어오지도 않고 서성이다가 다시 돌아가는 청개구리였다.
키우면서 생각했던 점은 성향은 지 주인을 닮은 건지 웃기게도 무언가 꼭 나랑 닮았다는 것이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는 것이 사실인걸까
강아지들이야 흙 냄새, 풀, 자연이라면 환장하기 때문에 대부분 산책을 좋아라 하지만 또 사람처럼 제각각 성향과 성격이 다르다. 그 중 용이는 외향적이면서도 순한 편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순박하고 건강한 청년 같달까 !
엄마는 이런 용이가 든든하고 좋다고 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너무 맛있게 먹어주고, 복스러운 모습을 보며 가끔 너희들보다 낫다는 소리를 하고는 했다.
용이는 시츄 믹스견으로 종의 특성상 먹성이 좋고 성격이 좋은 것이 키우면서 장점으로 느껴졌었다.
다른 강아지들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 외로 입이 짧은 강아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비해 까탈스러움 없이 잘 먹고 잘 자라 주는 용이가 너무 대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용이는 나의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려났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놀러 다니기 바빴고, 내 힘듦에 더 치중하여 집에서 잠깐 귀여워하다가도 귀찮아하는 날도 많았다. 그저 내 몸 건사하기도 힘들다는 변명으로 포장한 채 이기적으로 굴었다.
앳되고 귀여운 모습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외형적으로도 눈에 띄게 보였고 행동이 점점 느려졌다.
갑자기 늙어버린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집에 들어갈 때면 뛰쳐나오며 반응하던 모습도 현관문을 열고 방안을 들어갔을 때가 돼서야 알아차리고, 박수를 크게 칠 때만 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중성화를 하지 않아 생긴 항문의 작았던 종양은 점점 커지면서 피고름이 생기기 시작했고, 피가 묻기 일쑤여서 다시 병원을 데려가서 수술 관련 상담을 받았다. 그때서야 들은 사실은 이미 눈과 청력이 멀었다는 것이었다. 소리에 대한 반응이 느려진 것은 어느 정도 눈치챘었지만, 눈은 조금의 반응 정도만 하고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청천벽력 같았다.
왜 그걸 여태껏 몰랐는지 나는 백내장이 살짝 온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여태 관심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사실은 어느 정도 알면서도 회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 또한 어떠한 결과를 맞닥뜨리기가 무서워서 하루 이틀을 미루기 일쑤였다.
사실 나는 못난 주인이었다.
항문의 종양은 제거하지 않으면 삶의 질이 떨어진 채로 지내야 하는 것이었고, 수술한다면 전신마취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두 가지의 선택지에서 고민해야 했다.
종양이 커지면서 피고름이 나는 것을 보며 용변에 힘들어하고, 여기 저기 묻어나는 것에 대한 여러 불편함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거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훨씬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저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술 후 항문의 종양은 깨끗하게 제거되었다. 잘 극복해준 용이가 그저 대견하고 고마웠다. 수술 직후라 조금 잘 못 걷는 것일까 하고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잘 걸을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잘 못 걷기도 했다. 병원에 다시 데려갔을 때 신장이 안 좋다며 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전신 마취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마취를 약하게 했지만 결국 나이 때문에 무리가 간 듯 했다.
결국 종양 제거를 한 선택이 잘못된 것이나 싶어 너무 괴로웠다. '수술 없이 그냥 약 정도만 바르고 케어하면서 지냈으면 그래도 신부전까지는 안 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 선택은 돌이킬 수 없었다.
신부전으로 인해 습식 사료로 바꾸어야 했고, 먹는 것도 이제는 가려야 했다. 좋아하는 닭가슴살도 고단백이라 쉽게 줄 수 없었다. 먹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데도 불구하고 마음껏 줄 수 없다는 것에 마음 아팠다.
아프고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수명 떼어주고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년 떼어줄테니 나 50대까지 함께 해주면 안되나..'
별 의미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인 내게 용이는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다음 생에는 꼭 사람으로 태어나서 마음껏 먹고 마음껏 뛰어다니고 하고 싶은 것 다 누렸으면 좋겠다는 바램뿐이었다.
사람들은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주인만 보고 끽해봐야 잠깐 밖에 나가는 정도가 대부분인 반려 동물의 삶이 뭐가 그렇게 호의호식한다고.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도 없고, 주인만 바라보고 돌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저 안타까울 뿐
병원에서는 길어봐야 수명이 1년 남짓 정도라고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심 믿고 싶지 않아 외면했다.
이렇게 잘 지내는데 무슨 1년인가 싶었다.
벌써부터 빈자리를 생각하면 먹먹하기만 한데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