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내려야 하는 이유
글을 써야하는데 글을 끝까지 끝끝내 쓰기 싫은 그런 날이 있다. 몇해전, 유럽에 다녀와서 책을 쓰던 그때
나는 뼛속까지 긁어서 글을 써내려야 했다. 눈물없이 쓸 수 없는 시간이었다. 누가 보챈 것도 아니였고 벌금을 내야할 것도 아니었다. 그저 흔적을 남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는데도 수없는 자기검열, 좌절감과 싸워야했다.
그 날은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몇시간은 고개를 파묻어야 했고 몇시간은 문장과 문장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내 자신과 쩔쩔매야했다. 어떻게 저떻게 하나의 글을 완결지었을 때, 나의 치부와 못남을 기꺼이 세상에 까발렸을 때, 나는 이유모를 해방감과 시원함을 느꼈다.
몇달 후, 그 책이 인쇄되고 누군가에게 읽혀졌을 때
누군가는 눈물을 지었다고 했다.
내 글이 읽혀서 누군가의 마음에 뱅그르르 떨어졌을 때, 이 모든게 그 한순간을 위해서였다면 뼛속까지 긁는게 그렇게 아픈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써내려야하는 글들이 무엇을 남기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우리에게 조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싶어서. 그리고
나도 잃고 길도 잃은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