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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Nov 18. 2023

실수도 매력이 될 수 있나요?

나의 발칙한 실수 이야기

'실수' 하면 뒤따라오는 감정이 몇 개 있다. 두려움, 수치감, 당혹감, 더 나아가면 치욕스러움 그런 것들. 그런데 실수 뒤에 전혀 다른 류의 감정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제주에서 처음 알았다. 아니 배웠다.




지난봄, TCI 검사를 받았다. 해설해 주는 선생님의 말을 재구성해보면 이랬다.


"실수 안 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 같아요.


굉장히 계획적인 분으로 보이는데, 계획적인 것을 선호한다기보다 에너지 관리의 방법처럼 느껴져요. 실수를 하면 에너지가 급감하고 타격을 크게 받는 편이시죠? 사실 인생에서 실수와 실패 그리고 원하지 않는 일들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을 피해 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계시는 느낌이에요.


지금은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  "실수 안 하기" 패턴을 쓰는데, 이제는 점점 그 패턴을 사용하기가

힘들어져서 다른 방법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실수를 예방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생겨도 에너지를 금세 회복할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을 높이셔야 해요. "


그렇게 나의 성장과제를 인지했으나, 그 이후로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본의 아니게 회사에서 실수를 하고, 그 실수가 너그러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면서 한차례 성장했지만 사람이 뒤집힐 정도의 변화는 아니었다. 하나의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일은 존재가 뒤집히는 일이었다.





실수, 나를 각인시킨 방법


제주 공유오피스에서 공간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을 도왔다. 처음 해보는 일, 처음 만난 사람들, 처음 겪는 환경들 속에서 긴장도는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빈틈없이 해내야만 이곳의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수한 날에는, 큰일이 아니었음에도 밤에 잠도 안 오고 마음이 괴로웠다. 나아가서, 무언가 잘못되면 나와 관련이 없어도 다 내 탓 같은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다. 6일 차에는 매니저님에게 혹시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도 있냐고 물어봤었다.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할지, 수치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10일 차 점심시간이었다. 매니저들과 셀프 계란프라이를 제공하는 낙지볶음집에 갔다. 각자 일사불란하게 테이블을 세팅했고 나는 몇 개의 계란프라이를 맡았다. 그런데 내가 맡은 계란프라이들만 익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 계란프라이와 프라이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뒤집개로도 뒤집어보고 계란프라이도 살펴봤다. 답은 거기에 없었다. 왜냐, 프라이팬 불을 켜지도 않았으니까.


불도 안 켜고 계란프라이를 하는 내 모습이 나도 우스웠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떨까. 이런 모자란 모습이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무능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건 아닐까. 그런데 매니저들의 반응이 예상외였다.


"에피소드가 많은 분이네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실수, 나를 사랑하게된 계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 머릿속의 공식은  "실수 = 민폐" "실수 = 수치" "실수 = 불신"이었는데, 여기선 "실수 = 에피소드" "실수 = 즐거움"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나의 일상은 매일 이런 실수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혼자 실수하고 덮을 수도 있는데, 칠칠치 못한 행동을 하면 꼭 누군가에게 목격당했다. 그런데도 나는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매일 에피소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고, 누군가를 매일 웃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실수하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도 사랑을 받은 기억이 가득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매일 일어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워지기까지 했다. 판교의 나는 똑 부러지고 야무진 사람이었는데, 제주의 나는 모자람 투성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인들이 제주에 놀러 와서 이런 나를 보고 "내가 아는 너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타인에게 매일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니 더 이상 실수하는 내가 밉지도 수치스럽지도 않아졌다. 어느 시점에서는 본인도 인정하는지 스스로를 '동네 바보형'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잔뜩 경직되었던 내가 스스로를 비꼴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제주를 떠날 즈음에는 나를 상징하는 말이 '우당탕탕'이 되었는데, 이런 별명이 제법 좋아지는 경지까지 가기도 했다.


누군가는 계란프라이 하나 가지고 뭐가 큰 실수이며 변화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스스로가 ‘실수할 수 밖에 없는 사람’임을, ‘빈틈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긴장감도 많이 낮아졌다. 본인에 대해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는 것, 빈틈을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나쁜 습관들이 뿌리 뽑힌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성과였다.



실수의 순기능


미국의 심리학자 앨리엇 애런슨에 따르면 "실수 효과(pratfall)"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약간 빈틈이 있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며, 실험에 따르면 사람의 실수나 허점이 상대방에게 매력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매니저들과 급속도로 친해진 것은 계란프라이 에피소드 때부터였다. 한 매니저는 첫 하루이틀 동안은 "친해지는데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실수 에피소드를 거칠수록 더 편안하게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3달간 매주 주말을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


"실수 안하기" 패턴을 가지고 완벽한 모습을 보이면 이곳의 사람들과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히려 결점을 보인 탓에 인간적인 호감을 갖고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렇게 제주에서 나의 빈틈을 드러내고 수용받는 삶을 살면서, 자신을 조금 더 받아들이는 감각이 생겼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가도록 돕는 하나의 큰 축이었다. 숨쉬기 힘들만큼 조여오던 뜨거운 여름이 점점 풀어질수록, 그러니까 바람이 시원해질수록 회복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만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이 행복한 꿈을 꾸면, 자면서도 웃는다는 것이다. 긴긴 유럽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자면서 웃는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유럽의 조각들이 꿈에 나왔는데 그게 너무 행복했었나 보다.


그리고 일 년 뒤 제주 생활을 청산하고 육지로 돌아온 첫날, 제주 꿈을 꿨다. 내가 또 우스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고, 함께한 사람들이 크게 웃는 내용이었다. 그게 너무 행복했는지 꿈속의 나도 웃었고 꿈에서 깬 나도 웃었다. 실수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다 못해 좋아져 버리다니, 나는 이제 "실수 안 하기" 패턴 말고 다른 패턴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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