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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Nov 19. 2023

제주와 작별하던 날

이제 정말 끝이예요?

제주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 있을까. 그날은 마치 그런 게 있는 것 같았다. 긴긴 여행을 떠나며 혹시라도 빠뜨린 게 없을지 두 번 세 번 체크하는 사람처럼, 미처 주워 담지 못한 글은 없을지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운전대를 잡으면 글을 쓸 수 없으니 애플워치로 녹음을 하고, 비행기가 뜨기 전에도 필사적으로 펜이랑 공책을 들어 글을 썼다. 마치 제주에서 발이 뜨는 순간부터 글이 안 써질 것처럼 말이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윽고 1시간 내내 무언가를 끄적였지만 도무지 마음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건지 혼란스러웠다. 써내려야 할게 아니라 버렸어야 하는 것들인데 김포까지 데려가고 있는 게 아닐까.    


드디어 김포에 도착했다. 항상 제일 일찍 내리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었는데 그날만은 예외였다. 캐비닛에 내려야 할 짐이 있다는 핑계로 승무원이 눈치를 줄 때까지 기다렸다. 가장 마지막으로 내리기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나처럼 떠나기 싫은 사람들이 더 있었나 보다. 그들의 사정이 있겠음을 이해하며 뒤에서 3등쯤으로 내렸다. 제주에서 이미 큰 환대와 인사를 받고 왔으니 누군가에게 마지막을 양보할 정도의 넉넉함은 있었다.

 

그렇게 억지로 비행기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갔다. 통로를 지나니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저 사람들 중에는 나만큼이나 속사정이 복잡한 사람이 있을까. 서로의 사정을 교환할 순 없을까. 내가 진 고민과 물음표들을 저 사람에게 넘겨서 제주로 보내고, 저 사람의 고민을 내가 직접 서울에 묻어주는 그런 일 말이다.


그런 실없는 상상을 하다가 느릿하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드디어 수하물 찾는 곳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나가면 정말 육지에 온 것이 된다. 실감이 나지 앉았다. 그저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싶어서 화장실로 달달 걸어가다가, 남자화장실에 들어갈 뻔 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겨우 화장실에 문을 잠그고 들어가 눈물을 쏟았다. 아니 짜냈다.


마음에는 뭔가 먹먹한 것이 있는데 그 실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홍수처럼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으나 제동이 걸린 것처럼 눈물공장이 잘 가동되지 않았다. 냄새나는 화장실에 변기를 닫고 앉아서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주저앉을 수 없는 몸 대신 마음을 주저앉혔다.  그 마음은, 행복했던 시간들을 어떻게 다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과 혼란스러움, 이별에 대한 서투름, 혹시 내가 꿈을 꾼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겹겹이 쌓인 것이다. 나는 언제 무너져서 이 마음을 털어낼 수 있을까.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떠나지 못할 마음은 뭘까. 여기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겠는 마음이라 '재진입금지' 스티커가 붙은 유리문을 앞두고 속으로 한 마디씩 하며 걸어갔다.


'하나, 마음이 잘 추슬러지고 정리가 될 수 있길'

'둘, 이 이별과 이상한 감정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건져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마지막으로, 육지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가득 차길'


이 세 가지를 소원처럼 빌고 출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전의 눈물은 기억도 나지 않는 듯이 다음 약속을 위해 도착층 화장실에 들렀다. 거울에 도시의 얼굴을 입혀야 했다. 안 하던 마스카라도 했다. 이게 얼마만의 풀메이크업인가. 제주에서는 볼 수 없던 정성이다. 나도 내 얼굴이 낯설어서 민망했다. 아마 한 동안은 낯선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되겠지.



밖으로 나가니 생경한 풍경이 이어진다.

서울은 목도리를 하는구나. 패딩도 입네. 제주에선 3일 전에 반팔을 입었는데. 적응하는 데에는 마음만 기다려주면 될 줄 았는데, 몸에게도 시간을 줘야 할 것 같다.





"이제 정말 끝이에요?"


라고 묻는 사람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다고 말했으니까, 나는 당당히 걷는 걸음에 힘을 주어야 한다. 선택에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은 오롯이 나니까 분당에 다시 정을 붙이고 살아야 한다. 그래도 냉정함만으론 마음이 완전히 달래 지지 않아서 약간의 낭만도 더했다.  아쉬워하는 말에는 '다시 올 거니까'라고 답한 기억을 헤아리며, 제주를 누빌 가까운 미래를 옷 속에 품은 사진처럼 마음에 묻었다. 그제야 강서구의 약속장소로 출발했다.


긴긴- 제주 생활,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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