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일탈
엄마는 나를 낳을 때까지 당연히 아들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때 당시 성별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웬걸, 다리밑에서 주워보니 딸이다. 그때 엄마 아빠는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그 딸은 자랄 때 장난기도 아주 많고 하는 행동도 아들 같았다. 밥은 항상 한 숟갈씩 남기고 말도 잘 안 들었다. 태어난 것도 청개구리짓인데 하는 짓도 딱 그랬다. 그리고 여전히, 어쩌다 흰머리가 날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청개구리는 어디 멀리 못 갔다.
요즘엔 하라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하고 싶은 게 또 생겼다. 바로 글쓰기. 글을 쓰지 못할 환경에 놓이면 글을 쓰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어디 구석에 숨어서, 화장실에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샤워하다가도 중간에 뛰쳐나와서, 운전하다가도 멈춰서 메모장에 쓴다. 손이 없으면 녹음도 한다. 심지어 다른 일을 하다가 딴짓처럼 글을 쓴다. 머릿속에서 슈팅스타가 터지는 듯한 기분이라고 묘사하면 너무 유치하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상하게 팡팡 써진달까. (잘 쓴다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많이 써진다.)
그런데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완벽한 환경이 제공되면, 그러니까 글 쓰는 것 말고는 해야 할 일이 없을 때면 글이 그렇게 쓰기가 싫다. 글 쓰는 게 숙제 같고, 잘 써야 할 것 같고,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당최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글쓰기가 싫어서 울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청개구리처럼 마음을 거꾸로 먹는 걸 보니, 내가 글을 즐겁게 쓸 수 있는 조건은 간절해지게 만드는 환경인가 보다. 이런 점에서는 글은 확실히 나의 주메뉴가 아닌 사이드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이 글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흔들리는 나뭇잎이 좋아서 일탈하며 몰래 숨어서 쓰는 글이다. 글쓰기는 일탈이자 일종의 바람(?) 같은 건가 보다.
사실 소소한 청개구리지, 살면서 엄청 큰 비행이나 일탈을 저질러보지 못했다. 그런 탓에 나이가 들어서도 잔잔바리로 일탈을 하나보다. 인간이 저질러야 하는 일탈은 총량이 있는 것인가. 평생 한번쯤 해야 할 일탈이라면 지금이 제격인 것 같다.
글과는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까운. 적당히 아쉽고 적당히 스릴 있는 딱 이 정도가 좋다. 일단 지금은.
- 브런치 심사 넣는다고 했으면서 절필 위기까지 갔다가 방황하고 있는 가을날에, 제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