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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Nov 23. 2023

내가 하늘을 보는 법

아니 닿는 법

분당에선 고개를 들어야만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 깡시골에선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9할쯤 되는 것 같다. 매일을 하늘에 닿을 것처럼 살았다. 구름을 안을 것처럼 지냈고 두 팔과 두 다리로 산방산을 단숨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로 살았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하늘을 보다가, 누군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사람은 하늘에 닿는 법은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되려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거라고 했다.


그 사람 말이 맞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리면 내 키만큼 하늘이 더 멀어진다. 그리고 하늘과 땅사이의 거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 거리만큼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하늘과 땅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이 있는지, 함부로 쉽게 생겨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모든 것이 이 땅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까지 생각하게 된다. 하늘과 땅의 그 차이만큼이나 하늘을 이해하게 된다. 그제야 하늘에 닿게 된다.

여기 사계는 정말이지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다. 비행장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하늘을 가리는 것이 산방산 말고는 정말 하나도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곳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나는 하늘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 종종 바닥에 엎드렸다. 때로는 드러누워버리고 하늘을 안았다. 노을도, 별도, 구름도, 햇빛도 다 내 것이지만, 그 어떤 것에도 빚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육지에선 몇억의 빚과 시간을 저당 잡혀야 누릴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리고 몇 개월 뒤 다시 올라온 육지, 12층에 올라와도 하늘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하늘을 잘 보려면 바닥에 누워야 한다. 제주도가 그리운 만큼, 바닥에 잘 엎드려봐야지.  

이곳에서도 매일 하늘에 닿는 삶을 살고 싶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가슴을 땅에 닿게 할 때, 때로는 등과 땅이 마주하게 할 때, 이미 가진 것들이 보이고 하늘과 땅아래서 내가 채워야 할 것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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