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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Nov 24. 2023

모든 걸 버리고 떠난 적 있나요?

퇴사 후 제주도로

이미 손에 쥔 것과, 앞으로 품에 가득 안겨질 것들을 내려놓는 것은 어떤 용기일까.


그 용기로 인정, 보상, 좋은 동료와 상사, 집, 가족, 커리어, 자기 계발 등 모든 것을 멈췄다. 내집마련도, 결혼도 미루겠다는 뜻이겠지. 지금 생각해도 두 번은 오기 어려운 순간이다.  모든 것을 버렸지만 단 하나,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으니 두렵지는 않았다.

 

퇴사하고 이틀 만에 제주도로 떠났다.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끊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냐는 사람의 물음에는 '나도 모른다'라고 답했다.


진짜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었다. 아니 흘려보내야 할 것이 있는데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안 됐다. 계획형 인간인 계획 짜기를 포기했다. 인생이 뒤집어질만한 포인트가 맞기는 한 것 같다. 바라는 것 오직 한 가지는 시계 보지 않고 밥을 먹는 것, 시간을 죽이는 것.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짐을 싸는 그 기분은 참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것도 필요하겠지? 저것도 필요하겠지?' 하며 짐이 늘어만 갔다. 육지가 아닌 제주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을 싣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기대감과 설렘도 같이 실었다. 그래서인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제주, 첫 3일 동안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무슨 이야기든 다 할 수 있고, 어떤 모습이든 다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 덕분에 인생에 찾아온 여름방학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는 함께 비를 맞고, 밤을 맞고, 노을을 맞았다. 옛날 노래를 들으며 깔깔 웃기도 하고, 인생사진을 찍어주며 으쓱대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맛있는 것을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충전되는 시간을 잔뜩 보낸 후, 친구들을 공항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왔다. "언제 올 거야?, 우리 언제 볼 수 있어?"라고 묻는 말에는 침묵해야 했다. 포옹으로 내 말을 대신할 뿐. 기대와 설렘으로 엉망인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어떤 것에도 약속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듯이, 친구들도 떠나보냈다. 이제, 진짜 혼자다. 여기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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