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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Nov 25. 2023

대책 없이 퇴사한 게 자랑인가요?

네니요

대책 없이 퇴사한 게 자랑이냐? 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사실 자랑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멈춤을 누군가는 쉼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넘어짐이라고 보기도 한다.

환승이직도 아니고, 창업도 아니고, 무언가를 정해놓고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퇴사를 하는 건 정말 대책 없는 일이 맞다.  누가 보기엔 철없는 행동일지도,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으며, 나름의 선택이 있다. 나는 내 나름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퇴사한 지 6개월즘 된 어느 날 서울에서 조금은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데 왜 이리 움츠러드는지 모르겠더라.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말에는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제주에 있다고 하면 모든 게 설명이 되지만, 올라와서는 '백수'라는 말을 내 입으로 꺼내기가 민망했다. 놀만큼 놀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이 하얀 내 자신이 약간은 창피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와 서울은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나의 편견일 수 있다.) 이곳은 자신의 커리어, 유명세, 돈, 위치, 소유가 설명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세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제주의 바람보다 더 거센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아무 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 미리 준비라도 해놓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생각했다. 차라리 '나 지금 나도 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놓고 위로를 받아야 할까, 아니면 나 그래도 뭐 하고 있어.라고 지어내 말해야 할까. 여러 생각이 들다가, 지금 나는 나름의 과정, 그러니까 꼭 통과해야 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대책 없이 퇴사를 했다는 것은, 사실 일보후퇴한 게 맞다. 일종의 넘어짐이 맞다. 반절은 인정한다. 솔직히 남들이 우러러보며 본받아야 할 선택은 아니다.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면 쌍수 들어 응원할 일이지만, 누가 대책 없이 퇴사하기를 소원처럼 빌겠는가. 아무도 손꼽아 바라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평생 안 넘어졌으면 좋겠고, 실수를 안 했으면 좋겠지만 인생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으랴. 내가 잠깐 이렇게 쉬는 것이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실수'에 속한다면, 나는 이 실수 이후에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을 배우리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본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퇴사 후 제주는 해독과 치유의 시간이었다면, 지금 육지에서의 나는 일어서는 법을 배울 것이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겠지만 인생에서 크게 일어나는, 어쩌면 실수일 수 있는 이것, 그러니까 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 내 몸과 기억, 그리고 시간에 새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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