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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Nov 26. 2023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

이제야 내게 가르쳐주는 것

외고입시와 대입입시에 연이어 실패했다. 특수반에도 들어갔고, 늦은 새벽까지도 잠을 밀어낼 정도로 의지도 있었지만 결과는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커가며 들었던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말은 점점 집구석에 먼지 쌓인 종이상장들처럼 우습게 느껴졌다. 스스로가 무용하다 느껴져서 세상과는 냉정한 마음을 갖기도 했지만, 존재만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시 뚜벅뚜벅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대학을 갔는데, 학교를 다니며 닥쳐오는 여러 가지 감정과 시간들을 어떻게 당해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많은 어른들이 공부하는 방법은 알려줬는데 아무도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내 마음이 괜찮은지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먹을 것과 쇼핑으로 풀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이라서 누구나 그렇게 하고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궁금해했어야 한다.


터널같이 어둡고 길던 취업준비기간을 지나, 겨우 회사에 들어갔다. 취업준비를 오래 했으면 일이 간절했을 텐데, 나는 4년을 못하고 번아웃이 와서 퇴사를 했다. 왜 번아웃이 온 걸까 고민했는데, 일의 양을 줄이거나 더 나은 보상을 받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근본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나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내면의 목소리를 잘 읽어내고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 내 안에 있는 불안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깨달아졌다.


근 4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매일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의 감정과 싸우느라 너무 힘들었다. 그것은 때론 자책, 완벽주의, 자기혐오, 타인에 대한 미움 등 여러 가지의 모습을 했지만 결국 '불안'에서 오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것을 잘 다루어내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사람에게 오는 외부환경과 이벤트는 어떻게 막을 길이 없다. 그저 내리는 비 같은 것뿐이다. 그런데 비가 내리면 그저 비를 맞고 감기 걸려야만 하는 게 아니다. 내리는 비를 맞이하는 다른 방법이 많다. 우산을 쓸 수도 있고, 우산이 없으면 뛰어갈 수도 있고, 겉옷을 벗어서 머리에 쓰고 갈 수도 있다. 때로는 카페에서 운치 있게 비 내리는 날을 즐길 수도 있고,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비가 내리면 그저 비를 맞을 줄 밖에 모르거나, 집에서 나오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번아웃의 원인과 내 내면의 불안을 이번 기회에 잘 들여다보려고 한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게 되면 언젠가는 비 오는 날에 운치를 즐기기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수도 있고, 비와 잘 어울리는 향수도 뿌리는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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