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뾰루지 덕분에
“양성 종양입니다.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 받으세요.”
오른쪽 허리에 작은 뾰루지가 생겼다. 등 아래에 난 거라 거울로 비춰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다. 샤워할 때 만져져서 무엇인가 생겼구나 싶었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여드름처럼 짜면 없어질 것 같아 샤워할 때 뜯어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뾰루지가 바지허리 부분에 닿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커지면서 아이도 보일 때마다 만지려 했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 가지 않을 이유는 많았다. 23년도 하반기에 생긴 뾰루지는 나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아래였다. 11월 말에 남편이 사역지에서 나가기로 했는데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 9월부터 이력서를 넣었지만 금방 구할 거라는 남편의 말과 다르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이 없었다. 내내 마음을 졸이다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다음 사역지가 결정됐다. 뿐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나가야 전세금을 돌려받는데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던 나는 내 몸의 작은 뾰루지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역지가 결정되고 이사를 했다. 새 학기가 아니라 어린이집에 빈자리는 없었다. 낯선 곳에서 가정보육을 하며 겨울을 보냈다. 3월이 오고 아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그제야 동네 피부과에 갔다. 작아서 레이저로 없애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의사가 대학병원에 가라는 것이다.
하필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대란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진작 병원에 가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며 급하게 병원에 연락을 돌렸지만 가장 가까운 진료는 4월이었다. 어느 곳은 6월, 심지어 8월에 초진이 가능하다는 병원도 있었다. 굳이 대학병원을 가야 하나 싶어 다른 병원도 찾아봤다. 그러다 전에 살던 곳에 있던 화상전문병원이 생각났다. 사이트에 들어가 찾아보니 양성종양 수술도 하는 곳이었다. 한 줄기 빛이었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였지만 빨리 진료를 보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했다. 입원할 필요가 없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1센티 정도 절개해서 병변을 제거하고 꿰매면 됐다. 곧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하고 한동안 병원을 다니며 소독을 받고 실밥을 풀었다. 시간과 돈을 쓰며 왕복 2시간 거리를 다니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출산 후 많은 병원을 다녔다.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와서 응급실에 가기도 했고, 피부에 발진이 올라와 피부과도 다녔다. 허리가 삐끗해 정형외과도 가보고 과민성 방광으로 비뇨기과도 다녔다. 그러나 이번 건은 예전과 달랐다. 조직 검사 결과가 애매했다. 확실하게 양성 종양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의사는 조직 검사 결과에 모양이 이상한 세포도 있으니, 또 생기면 그때는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작은 뾰루지 덕분에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과는 담쌓고 살아온 내가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를 배운다. 평소에 스트레칭도 안 하던 몸이라 작은 동작도 쉽지 않다. 안 쓰던 근육을 쓰려니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운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운동만 하면 온몸의 근육이 아파서 난리였다. 6개월 정도 지난 지금은 몸이 적응을 했는지 심한 근육통은 없다. 일주일에 두 번, 40분의 운동이 삶에 작은 활력을 준다.
다시는 작은 뾰루지를 만나고 싶지 않다. 내 몸을 등한시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몸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몸에 대해 알아간다. 또한 식사를 할 때 가급적 야채를 많이 먹으려 노력한다. 운동이 가기 싫어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땀의 상쾌함을 느낀다. 운동이 없는 날에는 스트레칭이라도 하고자 몸을 여기저기 늘려본다.
작아서 무시했던 존재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