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배틀
은은한 광이 나는 갈색의 삼익 피아노.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산 피아노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피아노는 아직도 친정에 있다. 세련된 검은색도 아니고 깔끔한 흰색도 아닌 촌스러운 갈색 피아노. 늘 갈색 피아노가 아닌 다른 피아노를 가지고 싶었다.
7살 무렵, 동네의 작은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간 피아노 학원에서 선생님이 주신 초콜릿을 맛본 후, 엄마를 졸라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시절 내가 다닌 유일한 학원이었다. 그러다 같은 반 친구로 손열음을 만났다. 그 친구는 대학 교수님께 사사를 받으러 원주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다녔다. 열음과 친해지며 그녀의 집에도 놀러 갔다. 우리 집보다 더 넓은 열음의 집에는 방음벽에 둘러싸인 피아노 방이 따로 있었다. 약간 어두운 방 중앙에는 빛나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일반 피아노 학원이 아닌 전문적인 선생님에게 개인 레슨을 받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전공과 취미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열음은 내 손이 피아노 치기에 좋은 손이라며 나에게 피아노를 계속 배우라고 했다. 나는 차마 피아노를 선택할 수 없었다. 내가 5학년 때 어렵게 친 쇼팽 연주곡은 열음이 이미 몇 년 전에 그녀의 독주회에서 쳤던 곡이었다. 피아노 천재인 친구 덕분에 피아노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일찍 알아차렸다. 내가 열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피아노를 전공했을까. 그렇지도 않다. 박봉인 공무원 월급으로는 피아노를 전공하기에 무리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에 가며 피아노는 나의 취미로 남았다.
피아노는 메마른 나를 단비로 적셔주었다. 매사에 조용하고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내가 피아노 덕분에 감정을 발산했다. 유키 구라모토나 이루마 같은 사람들의 연주곡을 구해서 수시로 쳤다. 홀로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에 빠져들면 굳어진 마음이 풀어지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피아노로 ccm도 참 많이 연주했다. 피아노를 치며 찬양을 부르면 내 마음이 곡조에 실려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피아노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잊지 못하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피아노 배틀이다. 본 지 10년도 더 되어 내용은 희미하지만 피아노 배틀 장면은 생생하다. 피아노 대결을 하기 위해 두 남자가 마주 본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따로 피아노를 친다. 같은 곡을 경쟁하며 치는데 마치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듯이 연주한다. 대결이 진행될수록 점점 분위기는 고조되고 절정에 이르러 두 사람은 격정적으로 같이 피아노를 친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피아노 위에서 춤추듯이 움직이는 순간은 숨죽이고 지켜보게 되는 최고의 장면이다.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나에게 저들의 연주는 도달할 수 없는 차원 그 이상이었다.
나름 피아노를 꾸준히 쳤다. 10살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를 한 덕에 피아노라는 끈을 가늘게 붙잡고 이어왔다. 이 가느다란 끈은 아이를 낳고 뚝 끊어졌다. 아이의 나이만큼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햇수가 쌓여간다. 가끔 친정에 가서 갈색 피아노를 보지만 어색하게 건반 몇 개를 눌러볼 뿐. 예전처럼 진득하게 앉아 마음먹고 치지 못한다.
조율이 안 맞아 미세하게 소리가 엉성한 갈색 피아노를 친정 엄마가 가끔 치신다. 얼마 전, 엄마가 층간소음 때문에 피아노를 마음껏 치지 못한다며 나에게 전자피아노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전자피아노가 들어오면 오래된 저 갈색 피아노는 사라질 것이다. 갈색 피아노가 마음에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막상 처분하려니 내키지 않는다. 갈색 피아노와 함께 한 시간만큼 추억이 많은 탓이다.
먼지를 닦고 갈색 피아노 앞에 앉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온 쇼팽 에튀드를 연주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굳어진 손가락이 뻣뻣해 느리고 서툴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도 영화 속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