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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잉 Nov 12. 2024

변기에 앉기 싫어하는 아이

배변훈련에 관하여

올여름 아들이 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아이를 키우며 백일의 기적은 못 느꼈지만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눈에 띄게 쉬워지는 것이 있었다. 돌이 지났을 때 분유에서 우유로 갈아타며 수월함을 느꼈고, 두 돌이 지나니 외출 가방이 현저하게 줄었으며 웬만한 건 다 먹게 되어 식사 준비도 쉬워졌다. 세 돌이 지나니 아이는 기저귀를 뗐다. 아니, 정확히는 반만 뗐다.      


작년 봄에 다니던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들이 배변훈련을 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당시에는 같은 반 5명 중 기저귀를 뗀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서 다들 느긋하게 있으니 나도 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가게 되었고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러다 올해 새로운 어린이집에 와서 아이의 친구들을 보니 기저귀를 뗀 친구가 꽤 됐다. 심지어 일찍 뗀 친구들이 많았다. 이때부터 어찌나 조급하던지. 기저귀 값은 또 얼마나 비싼가. 제일 큰 사이즈의 기저귀는 몇 개 들어있지 않아도 비쌌다. 한 달에 이 돈만 안 들어가도 좋을 것 같았다. 배변훈련은 36개월 전에 끝내는 게 좋다고 하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올여름이 가기 전 아이의 기저귀를 떼기로 결심했다.


‘SNS 속 남의 집 자식은 배변훈련을 한 지 일주일 만에 기저귀를 척척 떼던데, 우리 집 자식은 그 정도는 바라지 않아도 한 달이면 되겠지?’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는 기저귀를 쉽게 뗐다. 팬티를 입히고 아침마다 변기에 쉬를 하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변기에 쉬를 성공했고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밤 기저귀도 몇 번의 실 수 후에 졸업을 했다. 문제는 응가이다. 아들은 변기에 앉아 응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두 번 변기에 앉아 응가를 했지만 그 후로는 변기에 앉으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반쪽짜리 성공이라니. 기저귀를 떼면 내 삶에 여유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귀찮아졌다.      


아들은 응가가 마려우면 기저귀를 채워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난 아이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다시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를 입혀준다. 기저귀만 입히고 싶지만 아이는 무조건 바지까지 입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바지까지 입혀주면 아이는 그제야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응가를 한다. 응가를 다 하면 뒤처리를 해주고 다시 팬티를 입히고 바지를 입힌다. 그나마 집에서 응가를 하면 괜찮다. 아이는 꼭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응가가 마렵다고 하는데 그러면 화장실에 가서 기저귀를 갈아입히고, 다시 밥 먹던 자리로 돌아와 응가를 한 후, 다시 화장실에 가서 아이 뒤처리를 해주고 옷을 갈아입힌다. 이렇게 한 번 하고 나면 온몸에 진땀이 난다.     


아이가 변비가 있어서 변기에 앉기 싫은가 싶어 유산균도 사 먹이고 물도 많이 마시게 했다.  변기에 응가를 성공하면 맛있는 거를 사주고, 원하는 장난감도 사주겠다고 하는데 안 통한다. 듣자 하니 응가만 기저귀에 하는 생활을 6개월 이상 지속한 아이도 있다고 한다. 설마 우리 애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는데도 여전히 기저귀에 응가를 한다. 그 와중에 함께 배변훈련을 시작한 아들의 친한 친구는 아들보다 한참 늦게 소변을 성공하더니 가뿐하게 대변도 성공해 버렸다. 그 아이 엄마가 이제는 기저귀가 필요 없다며 나에게 기저귀를 그냥 주었다. 그 기저귀를 받았을 때의 씁쓸함이란.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더니 딱 그 꼴이다.     


지금도 배변훈련만 생각하면 막막하다. 아이에게 협박도 해보고 살살 구슬려 보기도 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이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영역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이의 배변훈련 성공을 위해 기도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내 욕심과 조바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기저귀 값도 아끼고 좀 더 편해지고자 했던 엄마의 욕심을 인정하고 아이를 여유 있게 바라본다. 변기에 앉기 싫은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해 본다. 아이가 밖에서 “엄마, 응가.”라고 했을 때 속으로는 짜증이 올라올지언정 따뜻하게 웃으며 기저귀를 채워준다. 때가 되면 누구나 그렇듯 우리 아이도 기저귀를 졸업하고 좀 더 성장할 것이다. 지나가면 이 또한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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