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기억"
Part 1. 아버지의 말 없는 초대
아버지와 나는 평상시에 말을 많이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무뚝뚝한 성격, 그리고 세대 차이.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우리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말로 꺼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유일한 대화의 문을 여는 말이 있었다.
"사우나 갈래?"
그 말은 어떤 날엔 화해의 손짓이었고, 어떤 날엔 조용한 응원이자 위로였다.
어색함도, 서운함도 그 말 한마디면 잠시 접히곤 했다.
우리는 수건을 들고 말없이 욕탕으로 향했다.
사우나실에 들어가 땀을 흘리다 보면, 이상하게 말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요즘 학교는 다닐만하니?"
"그냥… 괜찮아요."
평소에는 꺼내기 어려운 말들이 김처럼 피어올랐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적당히 지친 몸과 마음이 경계심을 풀어주는 느낌.
그리고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
등을 맡기고, 등을 밀어주던 순간.
그 무심한 손길 속에 담긴 미안함, 다정함, 그리고 가족이라는 굵은 끈.
그건 말보다 더 따뜻한 방식의 이해였다.
목욕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사 마시던 바나나우유.
늘 똑같은 맛이었지만, 유독 그날은 달고 시원했다.
지금도 그 맛을 떠올리면 마음이 말랑해진다.
그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녹아든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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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따뜻한 물에서 피어나는 기억
시간이 흘러, 나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았다.
딸아이를 안고 욕조에 들어가 물을 뿌리고, 머리를 감기고, 등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그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아이를 씻기며 나는 매일 생각했다.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내가 딸을 목욕시켜줄 수 있는 날은, 어느 순간 끝이 날 테니까.
그래서 더욱 마음을 담았다.
수건을 덮어주고, 작은 발을 닦으며, 이 모든 장면을 기억하고 싶었다.
온천에 간 날, 뜨거운 물이 걱정돼 물었다.
“사야, 너무 뜨겁지 않아?”
딸아이는 고개를 젓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면 행복한 추억이 떠올라서 좋아, 아빠.”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도 물속의 온기가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괜히 뭉클하고 벅찼다.
아버지와 함께한 사우나가 내게 그랬듯,
딸에게도 이런 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도 나는 가끔 그 말을 떠올린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면 행복한 추억이 떠올라서 좋아…”
그 말은 내게 곧, 사랑이라는 말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