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아이에서 기적을 건네는 어른이 되기까지"
미림빌라, 그 이름만 들어도 기억이 잔잔히 올라온다.
방 안 가득히 퍼졌던 보일러 냄새와 뽀얗게 서리 낀 창문, 창밖 골목에 쌓이던 눈.
나는 여덟 살이었고, 올해는 꼭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선물이 있었지만 정작 산타는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을 부릅뜨고 밤새도록 깨어 있으려고,
졸음이 쏟아질 때마다 찬물로 얼굴을 씻으며 버텼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 밤도, 나는 꿈속에서 눈을 떴다.
아침,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산타가 다녀갔다”고 말하며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손바닥만 한 그것은 내 작은 책상 위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냈고,
나는 매일 그것으로 연필을 깎으며 ‘산타가 진짜 있었구나’라고 믿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손이, 그 밤이, 그 선물이 전부 아빠였다는 것을.
산타가 아닌 척 하면서 내 잠든 얼굴을 바라봤을 그 순간.
아마도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만난 산타였다.
그때 이후로 산타는 점점 내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어릴 적엔 기적 같았던 존재가, 어느새 현실의 무게에 눌려 잊혀져 갔다.
그런데 지금, 나는 다시 그 기억을 꺼내 든다.
왜냐면, 내가 이제 산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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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딸은 편지를 썼다.
하얀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산타할아버지, 저는 착하게 살았어요”라고.
그 편지를 몰래 읽으며 나는 조심스럽게 산타 복장을 꺼냈다.
빨간 옷과 하얀 수염.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왠지 울컥했다.
그날 밤, 나는 산타였다.
딸 앞에 나타나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있니?”라고 말했을 때
딸의 두 눈이 커다랗게 반짝였다.
하지만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 놀라는 얼굴인데, 어쩐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딸은 이미 산타가 아빠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나를 위해, 마치 모르는 척, 믿는 척, 속아주는 듯한 그 표정.
나는 그날 밤, 여덟 살의 나를 떠올렸다.
산타를 믿었던 나. 그리고 지금은 믿게 해주는 내가 된 것.
딸은 내게 말한다. “산타할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나는 안다. 그 말이 곧, “아빠 고마워요”라는 걸.
어쩌면 딸은 나보다 더 다정하고, 더 배려 깊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몰랐던 걸 이제야 안다.
그 밤, 연필깎이를 손에 쥐여준 아빠의 마음을.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산타가 된다.
어릴 적엔 받기만 했던 선물, 이제는 주는 기쁨을 아는 어른이 되어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기적이 되기를 바라며 산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