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부스터 '아빠라는 이름'
Part 1. 누구에겐 당연한, 누구에겐 없던 기회
어릴 때부터 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누군가를 찾았다.
답이 안 나올 때, 두렵고 막막할 때, 인생이 내게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
그 사람은 늘, 아빠였다.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내 성적표보다 내 기질을 먼저 봐준 사람도,
취업을 고민하던 밤, 졸업하고 1년은 쉬어가도 된다며 그 흔한 강요 한 번 없이 내 어깨를 다독여준 사람도 아빠였다.
각 종 시험 준비로 멘탈이 너덜너덜했던 시기,
"지금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무거운 밤을 가볍게 만들어준 그 한 마디.
돌아보면 나는 살면서 수많은 ‘아빠 찬스’를 써왔다.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마치 누구에게나 그런 든든한 '백'은 당연히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군대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참 똑똑한 친구였다. 뭐든 혼자 해내는,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화 중 문득 말했다.
"너는 좋겠다. 고민 있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아빠가 있어서."
그 순간, 멍해졌다.
그 친구는 열여덟 이후로 인생의 모든 선택을 혼자 감당해왔다고 했다.
원하는 대학도, 군 입대도, 나중엔 취업까지.
누구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선택들.
그 말에 갑자기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솔직히 '아빠 찬스'라는 말은 금수저 밑에서 돈 걱정 없는 삶을 사는 친구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써온 ‘아빠 찬스’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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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이제 내가 누군가의 찬스가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그 ‘찬스’가 사라진 듯했다.
회사에서 내가 누구에게 기대거나 조언을 구할 자리는 많지 않았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평범한 직장인, 어디 가서 이름 석 자 남기기 어려운 그런 사람.
누군가에겐 그저 회색 배경의 무수한 사람 중 하나.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달라진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빠!" 하고 달려오는 아이 앞에서
나는 또 다른 의미의 ‘아빠 찬스’가 된다.
딸아이에게 나는 슈퍼맨이다.
힘도 세고, 뭐든 할 줄 알고,
심지어 "아빠는 다 알아"라는 말이 통할 만큼 똑똑한 존재다.
밤에 무서운 꿈을 꾼 날엔 "아빠 옆에서 자면 괜찮아"라며 나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하다.
내가 아버지에게 받았던 그 모든 안정감과 용기,
그건 이제 내가 딸에게 물려줘야 할 어떤 종류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딸아이가 앞으로 수없이 많을 갈림길 앞에 섰을 때,
그때도 내가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아빠였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늘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었기에
두렵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의 인생에 내가 그런 '찬스'가 된다면
그건 세상 어떤 성공보다도 따뜻하고,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일일 것이다.
언젠가 딸이 말해주면 좋겠다.
“나는 아빠 찬스를 써왔어.
그게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건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알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