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라는 이름의 밥상

아버지는 왜 늘 정답이었을까?

by 뱅대리

Part 1. 아버지의 권위는 언제나 당당했다


아버지는 집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 냄새가 싫었다.

“아버지, 나가서 피우시면 안 돼요?”

용기를 내 말했지만, 아버지는 정색하며 말했다.

“어디서 버릇없이…”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우리 집인데, 나도 이 집의 식구인데…’

어린 마음에 들었던 서운함은, 말 한마디 못한 채 그대로 마음 한켠에 가라앉았다.


김치찌개 사건도 아직 생생하다.

아버지는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좋아하셨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참치를 넣은 찌개가 더 입맛에 맞았다.

결국 어머니는 둘 다 맞춰주기 위해 밥상에 찌개를 두 개 올리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 불편해하셨다.

“어른들 기준에 맞추라고, 뭐든!”

어머니께 버럭 소리를 치셨고, 우리는 조용히 밥만 먹었다.


그 순간이 참 속상했다.

왜 어른이 정답이고, 우리는 틀린 걸까.

왜 함께 사는 집에서 어른의 입맛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나는 그날 이후 ‘권위’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건 언제나 누군가의 감정을 눌러놓고,

누군가를 조용히 만드는 말처럼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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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우리 집의 룰은 가위바위보 입니다


이제 내가 아빠가 되었다.

딸은 여덟 살, 말도 많고 취향도 뚜렷하다.

가끔은 외식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전쟁이다.

고기파 엄마와 치즈돈까스파 딸, 그리고 나는 조용히 냉면을 외친다.

결론이 안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한다.

“안 내면 술래~ 가위바위보!”


이런 방식이 어느새 가족 문화가 되었다.

처음엔 내가 제안했다.

누군가가 양보하거나 참지 않도록,

소리 지르는 어른이 없도록.

그래서 만든 작은 약속 같은 룰이었다.


하지만 가끔,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너무 맞춰주기만 하는 건 아닐까?’

아버지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건 어른이 정하면 되는 거야.”


그 말을 떠올리면, 그 시절 밥상이 떠오른다.

그때 아버지는 왜 그리 단호하셨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내린 기준이었을까,

아니면 어른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우리 가족은 서로의 입맛을 물어보고,

서로의 기분을 살핀다.

그리고 결정은… 가위바위보가 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만들었던 밥상과,

내가 만든 지금의 밥상은 참 다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우리 딸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 아빠랑은 가위바위보로 결정했어”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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