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기억위에 세운 사랑
Part 1. 가장 시끄러운 침묵
아홉 살의 여름, 나는 차 안 뒷좌석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외가댁에서 돌아오던 길,
갑자기 ‘꽝’ 소리가 울렸고
몸이 아래로 내동댕이쳐졌다.
눈을 떴을 땐, 차가 반파되어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 찢긴 철,
그리고 아버지의 비명소리.
그 소리는 아직도 내 꿈속에서 살아 있다.
음주운전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우리 가족을 덮쳤다고 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타박상만 입었지만
아버지, 어머니, 동생은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에는 파편이 박히고,
치아는 산산이 깨졌다.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없었다.
작은아버지 댁, 큰이모 댁으로 전학을 다니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초등학교 2학년을 보냈다.
그 짧은 1년 동안
나는 학교에서도 ‘이방인’이었고,
가족 곁에도 있을 수 없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존재였다.
한 달에 한 번,
서울 병원으로 가족을 면회 갔다.
그 시간이 끝날 때마다
“같이 가면 안 돼요?”
라는 말 대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1년 뒤,
우리는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날, 낯선 병실이 아닌
우리 집 거실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안도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나에겐
가족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지켜야 할’ 존재가 되었다.
그 이후로, 도로 위를 달릴 때면
의도치 않게 브레이크를 한 번 더 밟는 사람이 되었다.
차가 달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기억의 시끄러운 침묵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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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
딸이 네 살이던 어느 날,
나는 회사에 있었고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사야가… 사야가…”
그 뒤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내는 말 대신 울음을 쏟아냈고
나는 그 울음소리만으로
이미 모든 걸 상상했다.
피, 사고, 혹시나, 아니 제발.
딸은 킥보드를 타다가
턱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피가 너무 많이 나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뛰쳐나와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도했다.
“제 딸 대신, 제 목숨을 가져가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처음으로 140이 넘는 속도를 넘기며 달렸다.
그때 그 속도는
공포나 무모함이 아니라
‘간절함’이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는데
더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나는 울음을 삼켰다.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나를 보자 울었고,
딸은 마취를 앞두고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입술을 깨물며 참던 아이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아이를 안아 주지도 못한 채
벽에 기댄 채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 아이는 나보다 단단하다고.
그리고 내가 이 아이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그날처럼 다시는
나 없이 그 시간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늘 ‘다시’라는 공포를 남긴다.
하지만 그 기억 속에서
누군가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나는 조금 더 아빠가 되어갔다.
인생은 예기치 못한 충돌로 방향이 바뀌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그 사고는 나를 부수었고,
아빠라는 자리는 다시 나를 이어 붙였다.
그렇게 나는
부서졌던 기억들 위에
조금씩, 아주 천천히
사랑을 세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