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기억은 그렇게 손에 들려 있었다

by 뱅대리


Part 1. 아버지의 손엔 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시간은 일정치 않았지만, 대충 저녁 여섯 시 즈음이면

대문이 덜컥 열리고,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TV에서 눈을 떼고 현관 쪽으로 달려나가곤 했다.


그곳엔 늘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엔 언제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곽에 담긴 티코 아이스크림.

반짝이는 포장지의 엑설런트.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을 수 있는 투게더까지.


그 시절의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피곤한 하루 너머에 있는 배려,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사랑,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다정함이 아이스크림 안에 담겨 있었다.


그 따뜻한 손길이 늘 계속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였을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그 손에 들린 봉투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애써 외면했던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늘 같은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오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점점 그 손길의 의미를 무디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퇴근길은 단순한 귀가가 아니었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는

작고도 깊은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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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나도 누군가의 퇴근길이 되고 싶어서


나는 아버지만큼 감성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표현은 서툴고, 마음을 전하는 일에는 늘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은 따뜻함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몇 해 전부터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르기 시작했다.

마이쮸 하나, 츄파춥스 하나.

작고 시시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내겐 꽤 큰 결심이었다.


처음엔 별 반응 없던 아이가

어느 날 그러더라.


“아빠, 오늘은 무슨 선물이야?”


그 한마디가 마음에 남았다.

몇 년이 지나 초등학생이 된 딸은

내가 건넨 수백 개의 사소한 선물들을

‘아빠의 퇴근 선물’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끝에

작은 사탕 하나가 아이에게는 사랑의 모양으로 남았던 것이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사랑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쳐 있는 몸을 잠깐 일으켜 편의점에 들러주는 마음이라는 걸.


아버지의 손에서 받은 다정한 기억을

이제는 내가 딸의 마음에 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퇴근길을 선물할 수 있을까.



익숙한 일상 너머, 사랑은 늘 그렇게 손에 들려 있었다.

작은 것일지라도 꾸준히 전해지는 마음은 결국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누군가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힘이 된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다정하게 마무리해 주는 퇴근길이고 싶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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