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 위로 흐른 긴 시간
Part 1. 사나워 보여야 남자다
내 머리카락은 늘 위기였다.
조금만 길어도, 잔머리가 귀를 슬쩍 덮기만 해도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바싹 쳐. 아주 사나워 보이게.”
그 말이 늘 듣기 싫었다.
뽀얗고 얌전하게 생긴 내 얼굴을
덜 여리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이셨을까.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강해 보이는 남자아이’이길 원하셨다.
남자는 짧은 머리여야 한다는 철학은
집안에 철칙처럼 내려왔고,
그 기준은 동생에게까지 적용됐다.
여동생이 머리를 단발 이상으로 기르면
“그게 뭐냐. 바싹 쳐.”
아버지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우리가 아버지의 머리를 두고 뭐라 할 차례가 되었다.
대머리는 아니지만 머리숱이 많이 줄어든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깔끔하고 짧은 머리를 고수하신다.
“아빠, 이젠 좀 기르고 파마 좀 해요.”
“요즘은 옆머리 살짝 덮는 게 유행이에요.”
이런 말들을 쏟아내며
우리는 아버지를 “촌스럽다”고 놀린다.
아버지는 피식 웃고 넘기지만
어쩐지 괜히 미안해진다.
어릴 땐 ‘나만 억울하다’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짧은 머리 뒤엔
아버지의 바람이 있었다.
세상 앞에서 위축되지 말고
강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그 사랑이 너무 단단해서
머리카락마저 바싹 잘라야만 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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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아빠, 오늘은 이 핀 어때?”
딸은 다섯 살 때부터
내가 머리를 묶어주길 기대했다.
처음엔 고무줄 하나로 대충 묶었다.
핀은 늘 한쪽으로 쏠렸고,
헤어밴드는 자꾸 미끄러졌다.
그런데도 딸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했어. 아빠, 합격!”
그 말 한마디가
내 하루를 통째로 다정하게 만들어줬다.
그 이후로 나는 딸의 머리카락을 묶어주며
조금 더 신중해졌다.
귀밑으로 깔끔하게, 핀은 색깔에 맞춰서.
딸은 점점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점점 머리끈을 사 모으는 아빠가 됐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짧은 단발이 위생상 좋다는 이유로
딸에게 ‘바싹 자르자’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처럼 딸에게 ‘나의 기준’을 들이미는 순간.
내가 그토록 답답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는 내 안에도 자라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딸의 머리카락을 묶어줄 때
최대한 딸의 의견을 듣는다.
“오늘은 뭐로 묶어줄까?”
“이 핀 어때?”
질문을 던지고,
딸의 선택을 존중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딸이 더 단단하고, 더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다만, 이제는 그 사랑을
조금은 부드럽고, 조금은 유연한 방식으로
전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