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죽으면 안 돼

딸의 속삭임으로 돌아온 어린 날의 기도

by 뱅대리

Part 1. 이불 속에서 속삭이던 주문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걱정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2~3학년 무렵, ‘전쟁’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내 세계는 불안의 색으로 덧칠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전쟁영화가 나오면, 나는 극 중 인물이 아니라 내 아빠를 떠올렸다. 화면 속 총소리가 현실이 될까 두려워, 잠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그때마다 가슴속에서는 같은 문장이 맴돌았다. “아빠는 죽으면 안 돼.”


그 불안에는 어린 마음의 상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뚝이며 걷던 아빠의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나는 상상 속에서 아빠를 전쟁터로 보냈다. 달릴 수 없고, 숨을 고를 틈도 없는 그곳에서 아빠는 도망치지 못해 총에 맞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 어리석은 상상은 이불 속에서 내 눈물을 끊임없이 불러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얼굴이었다. 어린 나에게 아빠는 세상의 전부였고, 그 전부가 사라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속 주문은 늘 같았다. “아빠는 죽으면 안 돼. 제발, 내 곁에 오래 남아 있어 줘.” 그 말은 어린아이의 기도로, 동시에 세상을 버텨내게 하는 비밀스러운 힘이었다.


Part 2. 세대를 건너온 같은 말


시간은 흘러 이제 내가 아빠가 되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어린 시절의 나처럼 예민한 눈빛을 가진 딸아이가 비슷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 맑은 눈으로 묻는다. “아빠도 전쟁 나면 군인으로 끌려가?” 순간, 나는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혼자 울던 나 자신을 떠올렸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아이의 걱정은 똑같이 이어져 있었다.


더 깊이 각인된 순간이 있었다. 거실에서 평화롭게 놀던 딸아이가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작은 두 팔로 내 목을 감싸 안고, 볼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더니 그 작은 입술로 내게 속삭였다. “아빠는 죽으면 안 돼.” 그 순간 나는 전율처럼 몸이 떨렸다. 죽음을 가까이 상상한 적은 없지만, 그 말은 삶의 무게를 새롭게 얹어주었다.


나는 그날 비로소 진심으로 다짐했다. ‘그래, 나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내 아이가 불안을 품지 않도록, 언제나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어린 시절 나를 붙들었던 그 두려움이 이제는 딸의 사랑으로 되살아나 내 삶의 동력이 되었다. 사랑은 이렇게 대를 이어 흐른다. 우리는 서로의 걱정 속에서 지켜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서로의 사랑 속에서 오래 살아야 할 이유를 배운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14화바싹 쳐!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