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는 내 꺼!!"
어릴 적 우리 집은 야식을 자주 시켜 먹었다. 메뉴는 늘 비슷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등장한 건 치킨이었다. 아니, 그땐 치킨이라기보다 ‘통닭’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페리카나, 이서방 같은 간판이 동네를 지키던 시절, 비닐에 담긴 종이 박스를 열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 통닭은 어린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냄새였다.
치킨이 도착하면 어머니는 늘 분주하셨다. 앞접시를 꺼내고, 종이컵을 나누고, 뼈를 담을 그릇까지 챙기느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셨다. 하지만 나는 동생과 함께 치킨이 담긴 종이 박스를 뜯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바삭한 껍질에 눈이 멀어, 정작 그 한 상을 준비하는 손길의 수고로움은 전혀 보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작은 손이라도 컵 하나쯤은 꺼내놓을 수 있었을 텐데. 엄마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게 두었던 그때가,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미안하게 다가온다.
식탁 위에 치킨이 놓이면, 순서가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집기 전까지 우리는 감히 손을 대지 않았다. 그때는 어른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스며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늘 다리를 잡지 않으셨다. 가장 맛있는 부위, 가장 먼저 손이 가는 닭다리는 언제나 나와 동생 차지였다. 번갈아 들고 맛있게 뜯어 먹으면서도, 그게 부모님의 양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그 닭다리를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 덕분이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양보하고, 누군가는 미소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아이가 마음껏 닭다리를 들 수 있었다는 것을.
---------------------------------------------------------------------------------
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그 마음을 조금 알겠다. 치킨을 시키면 제일 먼저 상을 차리고, 뼈를 담을 그릇을 챙기고, 아이가 먹기 좋도록 가위를 드는 일은 어느새 나의 몫이 되어 있다.
그리고 치킨이 놓이는 순간, 딸아이가 작은 손으로 닭다리를 집어 든다. “이건 내 거야!”라며 씩 웃는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녹아내린다. 예전의 내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그때 깨닫는다. 닭다리는 단순히 맛있는 부위가 아니라, 그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자리였음을. 어릴 적 부모님이 내게 내어주셨던 그 마음을, 이제 나는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나도 다리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딸아이가 맛있게 뜯으며 행복해하는 그 순간, 내가 어떤 부위를 먹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날개든 가슴살이든 상관없다. 웃음소리와 환한 얼굴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큰 포만감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닭다리는 늘 집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의 차지였다. 어린 시절엔 그 사랑을 받는 아이였고, 지금은 그 사랑을 건네는 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딸아이가 닭다리를 들고 환하게 웃을 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닭다리는 네 거야. 아빠는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