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세상의 최선으로는 부족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버지는 누구일까. 나는 오래 고민해왔고, 결론은 단순하다. 행복하고 화목한 부부 사이를 아이에게 보여주는 아버지. 그것이 최고의 아버지다.
내 부모님은 사이가 좋을 때도 분명 있었다. 함께 웃고, 여행도 가고, 평범한 가정처럼 보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마다—사춘기,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해외 유학과 이민까지항상 크게 다투셨다. 가족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었기에, 방문 너머 점점 커지는 부모님의 언성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나중에 내 아이를 이런 문제로 울리지 않겠다고.
아버지는 당신이 아는 세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키우셨다. 하지만 친할아버지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탓인지,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서운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섯 살 때 함께 갔던 야구장, 초등학교 시절 데려가주셨던 농구장의 공기, 그 순간의 함성. 그래서일까. 지금도 어린 시절 응원하던 빙그레 팀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내 닉네임으로 쓸 정도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나는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진짜 행복’이라고 믿었기에, 두 분이 끝내 갈라서게 된 것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20년 넘게 다투고 또 다투던 끝에 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 “나는 해줄 거 다 해줬다.” 그 억울함 섞인 목소리가 서운했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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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일찍 결혼한 우리는 아직 미숙한 성인이었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함께 웃던 시간이 많았지만, 그만큼 크게 다투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어린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내와 말다툼을 하던 중 울음을 터뜨리는 딸아이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눈물을 삼키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방문 너머 부모님의 다툼에 이불 속에서 흐느끼던 소년이, 이제는 내 딸의 눈동자 속에서 되살아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정말 좋은 아빠”라고 말한다. 딸을 살뜰히 챙기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진짜 좋은 아빠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그 점에서 나는 아직 부족하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다툼과 언성 속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요즘 들어 더욱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사십 대에 접어든 지금, 나는 더 이상 성장통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전히 배우고, 후회하고, 고쳐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아마 나는 아직도 성장판이 열려 있는 ‘사십춘기 아버지’인지 모른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언젠가 딸이 내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아빠는 정말 엄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사람이었어...” 그때 비로소 나는 진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내에게도...딸에게도... 나는 아직 성장해야할 부분이 많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