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아버지란

"내가 아는 세상의 최선으로는 부족했다"

by 뱅대리


Part 1. 이불 속에 숨은 소년의 기억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버지는 누구일까. 나는 오래 고민해왔고, 결론은 단순하다. 행복하고 화목한 부부 사이를 아이에게 보여주는 아버지. 그것이 최고의 아버지다.

내 부모님은 사이가 좋을 때도 분명 있었다. 함께 웃고, 여행도 가고, 평범한 가정처럼 보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마다—사춘기,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해외 유학과 이민까지항상 크게 다투셨다. 가족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었기에, 방문 너머 점점 커지는 부모님의 언성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나중에 내 아이를 이런 문제로 울리지 않겠다고.

아버지는 당신이 아는 세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키우셨다. 하지만 친할아버지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탓인지,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서운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섯 살 때 함께 갔던 야구장, 초등학교 시절 데려가주셨던 농구장의 공기, 그 순간의 함성. 그래서일까. 지금도 어린 시절 응원하던 빙그레 팀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내 닉네임으로 쓸 정도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나는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진짜 행복’이라고 믿었기에, 두 분이 끝내 갈라서게 된 것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20년 넘게 다투고 또 다투던 끝에 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 “나는 해줄 거 다 해줬다.” 그 억울함 섞인 목소리가 서운했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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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사십춘기 아버지의 고백

시간이 흘러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일찍 결혼한 우리는 아직 미숙한 성인이었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함께 웃던 시간이 많았지만, 그만큼 크게 다투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어린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내와 말다툼을 하던 중 울음을 터뜨리는 딸아이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눈물을 삼키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방문 너머 부모님의 다툼에 이불 속에서 흐느끼던 소년이, 이제는 내 딸의 눈동자 속에서 되살아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정말 좋은 아빠”라고 말한다. 딸을 살뜰히 챙기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진짜 좋은 아빠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그 점에서 나는 아직 부족하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다툼과 언성 속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요즘 들어 더욱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사십 대에 접어든 지금, 나는 더 이상 성장통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전히 배우고, 후회하고, 고쳐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아마 나는 아직도 성장판이 열려 있는 ‘사십춘기 아버지’인지 모른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언젠가 딸이 내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해주길 바란다. “아빠는 정말 엄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사람이었어...” 그때 비로소 나는 진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내에게도...딸에게도... 나는 아직 성장해야할 부분이 많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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