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없고, 무상이라면, 비교가능성 판단시 고려할 사항 아냐
다국적 기업의 세무조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문제입니다. 국외 특수관계인(본사 등)과의 거래 가격이 적정한지, 즉 '정상가격'으로 거래했는지를 두고 과세관청과 납세자 간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지곤 합니다.
특히 글로벌 본사로부터 받는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나 용역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만약 별도의 계약서 없이 무상으로 이루어진 지원이라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판례는 이전가격 산정 시 본사의 용역 지원을 별도의 거래로 보고 분석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5. 10. 16. 선고 2024두54065 판결)입니다.
원고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C 그룹의 한국 자회사입니다. 원고는 의료장비 등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면서 '거래순이익률방법(TNMM)'을 통해 이전가격을 산정하고 법인세를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지방국세청(조사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원고가 신고한 가격이 정상가격과 차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의료장비 등 3개 사업 부문에 대해 과세관청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비교대상 업체들을 기준으로 정상가격을 다시 계산하여 법인세를 부과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과세관청의 정상가격 산정이 잘못되었다"며 불복했고,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습니다.
의료장비 사업 부문의 핵심 쟁점은 '비교가능성 분석'의 디테일이었습니다.
원고(납세자)는 의료장비를 수입해 팔면서, 장비 고장 시 본사(C 그룹)로부터 기술 정보나 매뉴얼, 혹은 직접적인 지원(유지보수 서비스 지원)을 받았습니다. 원고는 "과세관청이 정상가격을 산정할 때, 이 '유지보수 서비스 지원 거래'에 대해 별도로 비교가능성을 분석하지 않았으므로 위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심(2심)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본사와의 거래는 '장비 공급'과 '서비스 지원'이 섞여 있는데, 이를 뭉뚱그려 분석한 것은 절차적 잘못이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뒤집고 과세관청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파기환송). 대법원이 주목한 '실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거래순이익률방법(TNMM)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대법원은 이전가격 산출 방법 중 TNMM은 영업이익률을 지표로 삼기 때문에, 거래 품목의 미세한 차이나 기능적 차이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므로, 과세관청이 최선의 노력으로 유사한 업체를 선정했다면, 미세한 차이 조정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둘째, '유지보수 지원'은 독립된 거래로 보기 어렵다.
대법원은 원고와 본사 사이에 '유지보수 지원'에 대한 별도의 계약서가 없고, 대가도 따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는 별개의 용역 거래라기보다는, 장비 공급에 수반되는 그룹 차원의 부수적 거래 조건이나 기본 정책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셋째, 실제 이익 창출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
대법원은 원고의 유지보수 매출은 대부분 '부품 판매'에서 나왔고, 수리 기술도 국내 엔지니어의 숙련도가 중요하므로, 본사의 지원이 원고의 영업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유의미한 거래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근거하여 대법원은 "독립적인 거래로 보기 어려운 본사의 지원 행위까지 굳이 발라내어 별도로 비교가능성을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며, 과세관청의 처분이 적법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이전가격 세무조사 대응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형식보다 실질: 계약서나 대가 지급 없이 이루어지는 본사의 지원은 독립된 국제거래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TNMM의 유연성: 거래순이익률방법을 적용할 때는 완벽하게 동일한 거래를 찾기보다, '유사한' 거래를 찾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다국적 기업의 세무 이슈는 이처럼 사실관계 하나하나가 승패를 가르는 치밀한 논리 싸움입니다. 복잡한 국제조세 문제로 고민 중이시다면, 언제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대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