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위법확인과 처분부존재확인 소송 사례
세금 관련 소송이라고 하면 보통 세무서에서 날아온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취소소송'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세무서가 마땅히 해야 할 결정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을 때 제기하는 소송도 있습니다. 바로 '부작위위법확인소송'과 '처분부존재확인소송'입니다.
하지만 실무상 조세 분야에서 위 두 소송은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드물고 희귀한 소송입니다. 대부분의 조세 분쟁은 과세관청의 적극적인 부과 처분이 있거나, 납세자의 경정청구에 대한 거부 처분이 있는 경우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판례는 이러한 예외적인 두 소송에 관한 대법원 최신 판결(대법원 2025두33652)입니다.
현행법상 증여세는 신고만으로 납세의무가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세관청이 과세표준과 세액을 결정하여 통지해야만 비로소 확정되는 세목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세무서장이 "당신의 세금은 얼마입니다"라고 결정을 내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원고가 적법한 신고기한 내에 증여세를 신고, 납부하였음에도, 세무서(피고)가 원고가 신고한 내용에 대해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정 통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인 '부과제척기간'이 만료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원고는 두 가지 주장을 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주위적 청구: 세무서가 결정을 안 한 침묵(부작위)은 위법하다.
예비적 청구: 만약 부작위 소송이 안 된다면, 아예 결정 통지가 없었다는 사실(부존재)이라도 확인해 달라.
대법원은 먼저 부작위위법확인소송(주위적 청구)에 대해서는 "소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과제척기간' 때문입니다.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의 목적은 행정청에게 "빨리 어떤 처분이든 하라"고 명령하여 응답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미 부과제척기간(10년)이 지나버려, 세무서장은 이제 와서 세금을 결정하거나 부과할 권한이 없습니다.
즉, 소송에서 이겨서 "침묵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더라도, 세무서장은 법적으로 아무런 처분도 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원고에게 돌아갈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바로 예비적 청구인 '처분부존재확인소송'에 대한 판단입니다.
원심(2심)은 "처분이 없다는 걸 확인받아서 뭐 하냐, 어차피 돈 돌려받는 게 목적이니 바로 민사소송(부당이득반환청구)을 제기하면 되지 않느냐"라며 소를 각하했습니다. 이를 법률 용어로 '보충성' 원칙(다른 방법이 있으면 확인소송은 안 된다는 원칙)을 들어 배척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습니다.
"처분부존재확인소송에는 보충성이 필요 없다."
대법원은 행정처분의 무효확인소송이나 부존재확인소송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구제 수단이며, 굳이 민사소송 등 다른 방법이 있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원고는 신고만 하고 결정 통지를 받지 못해 납세의무가 확정되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고, 낸 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소송으로 '결정 통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받을 법률상 이익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나중에 민사소송으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해서, 행정소송인 처분부존재확인소송을 못 하게 막아서는 안 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판결은 과세관청의 결정이 없어 법률관계가 불확실할 때, 굳이 곧바로 민사소송을 가지 않고 행정소송(처분부존재확인)을 통해 그 부존재를 다툴 수 있는 길이 명확히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세무서의 침묵으로 인해 법적 지위가 불안정해지셨나요? 무턱대고 민사소송을 고민하기보다, 행정소송을 통해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전문가와 상의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