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펀드 사기, 은행원은 왜 무죄를 받았나?

[판례분석] '은대조정'의 실체와 사기 방조의 고의

by 김미래 변호사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의 김미래 변호사/공인회계사 입니다.


금융 범죄 사건, 특히 펀드 사기 사건을 다루다 보면 '범죄를 도운 것(방조)'과 '업무상 과실(실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를 자주 접합니다.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2024도3513)은 이른바 '은대조정(은행계정대 조정)'이라는 은행 내부의 회계 처리 행위가 쟁점이 된 사건입니다. 수천억 원대 펀드 사기 사건의 태풍 속에서, 이를 수탁 관리했던 은행 직원들은 사기 방조와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전산 조작을 통해 펀드 돌려막기를 도왔다고 보았지만,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도대체 '은대조정'이 무엇이길래, 그리고 법원은 왜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요?


1. 사건의 내막: "돈이 안 들어왔는데 마감을 쳤다?"


이 사건의 발단은 사모펀드의 환매 대금 지급 시스템에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펀드가 투자한 자산(채권 등)에서 수익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투자자들에게 환매 대금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문제의 펀드 운용사(사기 주범)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이고 실제로는 부실 사모사채 등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만기가 되어도 돈이 들어오지 않는 사고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때 수탁 은행 직원인 피고인들은 '은대조정(은행계정대 조정)'이라는 임시방편을 사용했습니다. 은행 업무 마감 시간까지 펀드 운용사로부터 들어와야 할 돈(사채 상환금)이 입금되지 않자, 전산 시스템상 다른 펀드의 여유 자금이나 은행 내부 자금을 끌어다 쓴 것처럼 장부(은대) 수치를 조정하여 일단 '마감' 처리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운용사가 돈을 입금하면 다시 원래대로 장부를 고쳐놓았습니다.


2. 검찰의 시각: "이건 명백한 돌려막기 공범이다"


검찰은 이 행위를 단순한 업무 처리가 아닌 중대한 범죄로 보았습니다.

자본시장법 위반 (펀드 간 거래 금지): A펀드의 돈으로 B펀드의 구멍을 메운 것은 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펀드 간 자전 거래'이자 '불법 거래'다.

업무상 배임: 은행 시스템을 조작해 다른 펀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위험을 초래했다.

사기 방조: 이런 식으로 마감을 쳐주니(은대조정), 운용사가 펀드 부실을 감추고 계속해서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것 아니냐. 사실상 '돌려막기'를 도운 것이다.


3. 법원의 판단: "시스템의 맹점일 뿐, 범죄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복잡한 금융 실무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피고인들의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판결문에 담긴 핵심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은대조정'은 '거래'가 아니다 (자본시장법 위반 X)


가장 치열했던 쟁점입니다. 법원은 '은대조정'이 실제 자금이 오고 가는 '거래'가 아니라, 은행 내부의 '회계적 마감 조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전산상 수치를 조정했다고 해서, 실제로 A펀드의 돈이 B펀드로 넘어가거나 권리 관계가 변동된 것은 아니므로(즉, 은행 전체 계정의 대차 균형을 맞추기 위한 내부적인 장부 조작일 뿐, 외부적으로 제3자와의 권리 의무가 바뀐 것이 아니므로)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입니다.

② 사기를 도울 '고의'가 없었다 (사기 방조 X)


피고인들이 운용사의 사기 행각(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닌 부실 사채에 투자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단순히 입금이 지연되는 유동성 문제"로만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운용사 대표가 "내일 아침까지는 꼭 입금하겠다"고 독촉받는 상황이었고, 피고인들은 마감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관행적으로 은대조정을 했을 뿐, 이것이 거대한 폰지 사기의 일환임을 알면서 도왔다는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③ 은행에 손해를 끼칠 목적도 없었다 (배임 X)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임무 위배'와 '손해 발생의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당일의 은행 마감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은대조정을 선택한 것이지, 회사나 고객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보았습니다. 비록 부적절한 업무 처리였을지언정 형사 처벌 대상인 배임 행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4. 마치며: '부적절한 업무'와 '범죄'의 차이


이번 판결은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과정의 모든 행위가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은행 직원들의 '은대조정'은 분명 규정을 위반한 부적절한 업무 처리였고, 결과적으로 사기꾼의 수명을 연장해 준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규정 위반(행정 제재 대상)'과 '형사 범죄(처벌 대상)'를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범죄의 '고의'가 입증되지 않는 한, 섣불리 형사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약]

은행 직원들이 펀드 자금 입금이 지연되자, 전산상 다른 자금을 쓴 것처럼 장부를 맞추는 '은대조정(은행계정대 조정)'을 하여 기소됨.

검찰은 이를 불법적인 '펀드 간 거래'이자 '사기 방조'로 보았으나, 법원은 "내부 회계 마감 조치일 뿐 실제 거래가 아니다"라고 판단함.

피고인들이 사기 범행을 인식했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마감을 위한 업무 처리였을 뿐 범죄의 고의가 없어 무죄가 확정됨.


법무법인 리브로는 장부 속 숫자를 법의 언어로 해석하여, 복잡한 경제범죄 사건에서 의뢰인을 위한 최적의 방어 전략을 제시합니다.

작성: 김미래 변호사 / 법무법인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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