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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Feb 23. 2022

공부 못했던 엄마가
똑똑한 아이 키우기

육아, 결코 쉽지 않지만 어렵지만도 않은


 공부를 잘하는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로서 뿌듯한 일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영재 키우기' 책을 읽고 태교에 신경을 썼다. 태어났을 때부터 두뇌 자극 주기를 하며 애정을 쏟았다. 부모가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지 않아 높은 지능지수를 물려줄 수는 없어도 즐거운 뇌 자극과 놀이로 똑똑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지능 유전은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환경의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하니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자녀의 똑똑한 두뇌와 공부에 더욱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칠공주 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하면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한다. "엄청 사랑받고 자랐겠어요." , " 막내라 귀여움을 독차지했겠네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 그렇긴 하죠."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 막내로서 존재감이 있기보다는 공부 잘하는 언니의 동생으로 치어서 살았던 기억과,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공부 잘하는 언니가 가족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도전해 볼 기회도 없이 이미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야만 하는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있는 언니와 비교가 되지 않았고, 설사 1등을 하더라도 고등학생인 언니에게 관심을 더 쏟을 수밖에 없으니 나에게까지 미칠 여력은 없었다. 공부를 잘해도 상을 받아도 가족의 기대와 애정을 끌고 오기에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무리였나 보다. 국민학교 시절 하루는 어머니께 이렇게 잘했는데 왜 칭찬을 해주지 않느냐고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그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린다. "말로 꼭 해야 하냐. " 하시며 끝까지 잘했다는 말씀을 안 하셨다.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어 얘기를 한 것인데, 무안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어려운 말인가 하며 입을 삐쭉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언니가 중학생 시절, 어머니가 이른 아침 뒤뜰 장독대에 물을 떠다 놓고 두 손 모아 빌고 계셨던 모습과 배냇저고리를 몸에 지니면 시험을 잘 본다고 하여 시험 기간에 배냇저고리를 넣어 꿰맨 베개를 베고 잤던 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것도 우리 집에는 없어 이 집 저 집 구하러 다녔던 귀한 배냇저고리를 대학 시험도 아닌 중학교 시험을 위해 어머니께서 쏟은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하기에는 같은 자식의 입장에서는 상처가 되었다. 어릴 적에는 그냥 부럽기만 했다. 언니의 입장에서 그 기도와 기대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나 그것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자식으로서는 마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태어나자마자 짜인 판에서 뒤늦게 게임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니냐고 따져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 시골 가난한 농부에게서 줄줄이 태어난 딸 들 중, 처음으로 공부에 재능을 보인 딸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을 꼬박 농사 지어봐야 쌀 열 두 가마니가 나오지 않으니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공부 잘해서 출세하는 것만이 살길이었으니까 우리 가문의 영광이 되길 믿고 정성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부모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자식 된 입장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부모에 대한 인정 욕구가 더 커졌는지도 모른다. 발버둥 쳐도 가질 수 없는 관심과 사랑이니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크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하며 지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언니들에게도 온통 사랑을 독차지했던 부러운 그 언니를 뒤로하고 내 길을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가족 안에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을 감사하며 자유를 선택했다. 지금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독립심을 길렀으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스스로 사랑받는 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후로 공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감정에 충실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놀고 싶으면 놀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었는데, ‘선택한 것에 후회는 갖지 말자!’였다. 아마도 공부로 존재감을 내세우지 못한다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자는 생각이었나 보다.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마도 가족에게 보여주고픈 마음이 컸을지 모른다. 최소한 공부로 차별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노력은 태교에서부터 시작한다. 쉽지만 영재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던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효과 좋은 방법은 태담이었다. 배속에 있는 아이와 임신한 날부터 출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수시로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씨, 기분, 일하면서 있었던 일, 생활 전반적인 일을 모두 이야기했고, 좋은 일뿐 아니라 힘들고 슬픈 일을 얘기할 때는 위로받는 느낌도 들었다. 남편이 배를 어루만지면서 감미로운 저음으로 동화책도 읽어주고 안부도 물으며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장르 불문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춤도 추었다.  처음에는 신혼 초 계획에 없던 갑작스러운 임신이라 어리둥절했지만, 오히려 빨리 와 준 아이가 고맙고 아직 얼굴도 모르는 아이와 소통을 하니 십 개월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행복해하며, 두뇌가 발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 보다. 아이는 6개월 즈음 ‘엄마’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세 돌 전에 읽기 독립을 하고 자연스레 또박또박 글씨를 쓰고 있었다. 해준 것이라고는 태어나 그림책을 보여주고 읽어주고 얼굴 보며 이야기하고 놀아준 것뿐인데, 신기하기만 했다. 언니가 물려준 동화책들을 아이가 읽어달라고 가지고 오면 그만 읽자고 할 때까지 읽어 주었다. 처음에는 아이 앞인데도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목소리도 작게 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재밌게 읽어줄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목소리도 다양하게 흉내를 내보게 되었다. 아이가 재밌다고 깔깔거리면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읽어 주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놀아달라고 하면 달려가고,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아이에게만 집중했다. 태교를 하지 않고, 태어나자마다 책을 읽어주며 놀아주고를 하지 못했다면 아이와 함께 하는 몇 시간도 지루하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태담을 하면서 이미 친해진 관계라 더 사랑스럽고 정이 쌓여서 하루에 열 시간을 넘게 놀아도 힘들지가 않았다.  육아휴직 삼 개월의 기간이 행복하기만 했다. 물론 아프기도 하고 잠을 못 자니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를 건강하고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어린이 집에 보내면서 직장을 다니느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틈나는 대로 산책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눈을 맞추고 스킨십을 해주는 것은 제일 중요한 일과였다. 부모의 웃는 표정과 다정한 목소리는 밝은 아이로 자라게 한다.



 세 아이는 오늘도 놀거리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충분히 부모와의 즐거운 관계를 경험했고,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넘친다. 아이들에게 책과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행복이다. 집중력과 이해력은 덤이다. 아이들이 부모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잠깐만” 하면서 한참을 말도 없이 안 오거나  부른 것조차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똑똑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 아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까다롭고 느린 아이도 가능하다. 부모의 인내와 기다림은 감내해야 한다. 육 년의 고생(?)으로 평생 자유로울 수 있다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한다.  현재 세 아이 모두 초등학생, 중학생인데 초등학교 입학하면 자립이다. 물론 가정에서 교육하는 것과 생활에서 도움을 줘야 할 것들이 있지만, 입학한다고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휴직을 하거나 마음이 바빠지지는 않는다. 미리 준비를 마치면 마음이 편해지고, 아이들이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큰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 집에 보냈는데, 잦은 감기와 기관지염으로 천식을 진단받기 직전에 일을 그만두고 셋을 키우며 전업주부를 하다가 지금은 활동 중이다. 방학인 지금도 아이들이 엄마를 찾기 전에는 자유인이다. 스스로 할 공부를 찾아서 하고, 선행 개념도 고민하며 혼자 공부한다. 공부와 관련된 학원을 가지 않아도 자기 주도로 가능하며, 이것 저것 배우고 즐기느라 하루가 바쁘다. 휴대폰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으며, 게임을 많이 하지 않았어도 센스가 있어서 매일 하는 아이들보다 잘한다. 뒹굴거리며 생각하는 시간적 여유도 많고, 여전히 책은 아이들의 친구이다.



 공부를 못하고 좋아하지 않았던 부모도 똑똑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 잘 모르는 수학 문제를 들고 오면 생각해 볼 수 있게 다시 질문해 주면 되고, 무료 온라인 수업(EBS) 도움을 받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후 아이가 선생님이 되어 엄마에게 설명해 주면 자기 공부가 되는 것이다. 모든 과목을 이렇게 하면 복습이든 선행이든 가능하다. 자기 공부를 하는 과정이 초반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 수 있지만, 이겨낼 수 있다면 이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공부가 힘들어하기 싫다고도 하고, 그 과정이 귀찮다고 투덜거리는데 엄마는 등 토닥이며 “공부하기 싫어서 어떡하냐” 하며 안아주고 투덜거리는 소리 들어주면 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다. 그러나 조금만 참으면 된다. 공부하기 싫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아이를 이해해주면 되는 것이다. 공부가 얼마나 하기 싫고 힘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공감도 쉬울 것이다.




 어릴 때 부모와 관계를 좋게 하려면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같이 하자고 할 때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상황이 안된다면 다음을 기약하고 꼭 지키도록 한다. 아이가 원할 때 들어주는 것을 아이는 사랑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사랑받았다고 믿는 순간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지 않지만,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애착이 잘 형성되고 관계가 좋으면 사춘기 시기도 잘 보내고, 오히려 더 친해질 수 있으니 육아가 쉽지 않더라도 끝까지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몇 년 후 자유인이 되었을 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며 아이에게 미안하고 후회된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후회가 남는 걸 보면 부모 마음은 다 같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소아과에서 아이와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엄마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는데도 엄마는 휴대폰 보느라 읽어주지 않아서 아이가 잠시 책을 뒤적거리더니 다시 책꽂이에 가져다 놓았다. 엄마 대신 읽어주고 싶을 만큼 안타까웠다. 예전에 그랬던 엄마들이 나중에 “왜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하는 엄마가 될 것이다. 위급한 일이 아니라면 모두 뒤로 미루고 아이와 함께 할 때는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초등학교 보내고 나서 엄마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고, 입학한다고 걱정하지 않고 일학년부터 자기 주도로 할 수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면 바쁘지 않으냐고 정신이 없겠다고 말하는데, 민망하게도 아이들이 아니라 나의 일로 바쁘다. 이 시간에도 글을 쓰느라,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부자 되기 실천하느라, 운동해서 몸 관리하느라, 독서하고 공부하느라 아주 바쁘다. 엄마 작가님 글 쓰신다며 아이가 밥을 차려 주기도 한다. 이렇게 마흔다섯인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유아기 아이에게 집중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쉽지 않지만 결코 어렵지 않은 육아에 도전하고 싶은 분에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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