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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Feb 21. 2022

실수를 바라보는 시선

아버지의 자식 농사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는 바빠서 나누지 못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뉴스거리로 자연스럽게 토론도 하고, 주말에 떠날 여행 계획도 세운다. 다섯이 얘기를 하다 보면 소란스러우면서도 이런 게 행복이지 하면서 웃음이 난다. 행복이 별 것이 아닌데도 그 별것이 아닌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시절을 오랜 기간 보냈었다.

 마흔다섯인 나이에도 가끔 남편에게 '아빠'하고 부를 때가 있다. 이런 사람이 아버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고, 아이들이 진심으로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어린양을 부리며 잔뜩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불러본다.



 아버지는 엄한 분이셨다. 가끔 웃기도 하셨지만 언제 돌변할지 몰라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했다.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이 제일 느리게 갔고, 혹시나 실수하는 일이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먹다가 밥알이나 반찬을 흘리거나, 국과 물을 엎지르는 날에는 어김없이 무서운 눈빛과 호통이 날아왔다.  "그렇지!" 하면서 정신을 어디다 놓고 있기에 그러냐면서 인상을 쓰시는 게 잊히지 않는다. 어리니까 더 흘리고 쏟을 수밖에 없는데, 아버지의 실수에 대한 자동적인 부정적 반응들이 뇌리에 콱 박혔나 보다. 큰 아이가 혼자서 하고 싶어 할 나이가 되었고, 서툰 게 당연한 시기에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실수하는 어린아이에게 무서운 표정으로 화를 내고, 아이는 미안하다며 울고 있다. 그때는 왜 화가 나는지 몰랐다. 쏟은 물을 치우는 게 힘들었을까? 아니면 실수하는 모습이 싫었을까? 그저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 학습한 것일까? 아버지와 닮아간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했고,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다. 화낼 일이 아닌데도 무조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노력을 하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에 좌절감마저 들었다. 아이에게 화를 낸 그날은 내가 몹시 밉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내 모습 안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아이에게 종종 그런 모습을 보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무서운 얼굴이 그대로 재현되는 게 무척 비참했다. 언젠가는 화내는 얼굴을 거울로 직접 본 적이 있었는데, 어릴 적 딱 아버지 얼굴이었다. 아무 잘못 없는 아이에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다는 게 더 가슴이 아팠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오는 표정과 행동들이 무서웠다. 당장 끊어내지 않으면 가족원 모두가 불행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책하고 밤새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최대한 빠른 시간에 해결해야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나야만 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화를 내고 사과하고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엄마로서 미안한 일이 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미안한 일을 줄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수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해야 했다. 아버지는 실수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정신을 못 차리기에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린 나이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서툰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부모로서 도와주고 지지해 줘야 할 위치에서 실수를 했다고 다그치고 화를 내는 것은 제대로 배우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다. 아버지도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신 탓도 있을 것이다. 고스란히 위험한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실수는 무언가를 배울 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처음 해 보는 일을 척척 잘 해내는 일은 거의 없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단단하게 배울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겠지만, 어릴 적에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여러 번 가르쳐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화를 낼 일도 아닌 것이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할 때, 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도와주는 환경이 아니라 혼내고 화내는 반응을 자주 듣다 보니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혹시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잔뜩 긴장을 하게 되면서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낯선 사람이나 새로운 환경에서는 자신감이 떨어져 실력 발휘를 하기 쉽지 않고, 특히 누군가 빤히 보고 있는 곳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경우에는 더욱 상태가 심각해진다. 실수를 하고 나서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표정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아버지처럼 혹시 화를 내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것이다. 현재는 많이 좋아졌지만, 특히 직장 생활을 할 때 많이 그랬다. 실수를 해서는 안될 병원에서 일을 했기에 긴장감이 최고조였던 것 같다. 물론 실수는 줄여야 한다. 되도록 주의해서 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직장에서 아버지의 실수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되새겼지만, 어릴 적에는 따뜻한 시선으로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씀을 해주셨다면 살아가면서 자신감 있게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의 모습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절대 대물림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으로 이를 악 문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제대로 된 사랑의 표현을 해주고, 따뜻한 시선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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