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며느리와 초보 시어머니
넷째 언니는 쿨한 성격이다. 형부가 결혼을 한 이유도 무엇을 해도 이해를 해 줄 것 같아서란다. 형부는 결혼 후 채우고 싶은 것이 많아 보였다. 가족에게 받지 못한 사랑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것도.
임신 중 시댁 일을 해주려고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내려가다 쌍둥이 미숙아를 출산하였다.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의사말을 무시하고, 쿨하게 괜찮겠지 생각하며 내려가 일을 하고 올라오는 중 양수가 터져 위험했다. 어렵게 얻은 쌍둥이 아이 중 한 명은 그때 처치가 늦어져 장애를 겪고 있다. 평생 언니 곁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시댁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언니를 시어머니는 좋아한다. 바쁜 농사일에 집안 일 할 시간이 없어 엉망인 집을 대청소하는 며느리가 언니다. 형부는 언니에게 맡겨놓고 취미를 즐기시는 분이지만, 시댁 사랑을 받는다.
다섯째 언니는 형부를 만나고 결혼을 생각하며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망설여졌단다. 쓰러져 가는 집에 아버님은 병환으로 누워 계시고, 시어머니의 말투며 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시니 큰 아들인 남편에게 기댈 수밖에 없고,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크게 따지지 않고 남편만 보기로 했단다. 그런데 화목한 가정을 못 보고 자란 영향이 컸고, 심리적으로도 어려운 사람이어서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갈등을 겪고 부부상담도 하고 긴 세월 동안 노력을 많이 했다. 시어머니는 그 인상이 맞았고 열등감에 언니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다행인 건지 형부가 외국으로 발령이 나서 결혼 3년 차에 나가 살았다. 한국에서 만날 시간이 거의 없이 5년 정도를 보내고, 귀국을 했다. 오랜 병환 끝에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도 홀로 몇 년 지내시다 세상을 떠나셨다. 결혼 15년 차에 명절에 갈 시댁이 사라진 것이다.
여섯째 언니는 차이가 나는 집안과 결혼을 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그 당시에는 여자가 키를 세 개 들고 와야 한다는 의사를 만났다. 학자 집안이며 의사 아들을 키워 낸 집에서 호락호락 내어 주겠는가. 시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두 어머니만 모시고 상견례를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서의 시아버지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 결혼은 무효라며 외치고 싶은 것을 꾹꾹 참고 앉아 계시는 모습. 후에도 시아버지의 의심의 눈초리와 며느리로는 못 받아들인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지만 성실하고 꾸준한 언니의 노력을 서서히 알아봐 주신 것이다. 결혼 18년 차인 지금은 시아버지가 제일 믿는 사람이 되었다.
언니들의 시댁을 떠올리다 보니 다들 힘들었겠구나 싶다. 이렇게 몇 줄로 정리가 될 이야기가 아니다. 복잡하게 얽혀서 풀어낼 수도 없는 끝없는 시련들이 이어져 나온다. 시어머니의 갑질을 받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기본은 깔려 있다. 말 한마디라도 송곳에 찔린 듯 안 아파본 며느리는 없을 것이며, 시댁이 좋아하게 하려면 얼마 큼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하는지도 상상도 가늠도 안된다. 타고난 천사 시어머니가 있다면 예외가 되겠지만.
설에 글을 쓰고 있는 이 상황에 감사하며, 배려해 준 남편에게도 고맙다. 지금까지 시댁 스트레스를 버텨내며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이제는 스스로 존중받고 싶다며 내 마음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낸 나에게도.
15년 시댁과 얽혀 오면서 낸 결론은,
"시어머니는 며느리 안부는 궁금하지 않아. 대접을 받고 싶을 뿐"
"며느리가 매일 안부 전화를 한다는 자랑을 하고 싶을 뿐이고, 그 안부를 받는 나는 좋은 시어머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힘들었는데, 너는 착한 아들과 편하게 살고 있으니 매일 안부 전화하는 것쯤은 쉬운 일 아니니"
시댁에 신경을 안 쓰고 사는 며느리 보기가 배가 아픈 경우이다. 3교대 일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전화하는 것을 매일 하라는 말씀을 듣고 더 하기 싫어졌다. 우리 사이는 그때부터 더 크게 흔들렸다. 마음에 있어서 한 전화도 아들이 시켜서 한 거냐며 의심 섞인 말씀을 하실 때, 정이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매일 안부 전화를 하라니 이건 무슨 경우일까 황당했다.
지금이라면,
"매일 안부 전화요? 제 목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으세요? 하하.. 3교대 하느라 많이 힘들어도 신경 써서 전화드린 건데, 그냥 하신 말씀이시죠? 하하"
하고 넘길 것이다. 며느리 초보라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네.." 하며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다.
시어머니도 내가 두 번째 며느리라면 이런 말씀은 안 하셨겠지. 서로 주고받았던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 아물려나. 아들로 맺어진 관계가 아들은 쏙 빠지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있는 상처라는 게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