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eezip May 29. 2022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의 집착이 있다.


문서를 다 뽑고 나서 오탈자를 발견했을 때, 나의 동료는 띄어쓰기가 두 칸이 되어있거나, 마침표가 찍혀있어야 할 자리에 콤마가 찍혀있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반면 나는 그런 부호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누끼를 따둔 이미지에 배경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건 못 참는다. 몇 장을 이미 뽑아둔 문서여도 다시 뽑을 만큼. 


그렇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르다. 

옷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께서는 중심과 균형을 맞추는데 집착을 하신다.

좋은 말로 포장하자면 제작자로서의 철학과 고집이 굉장히 강하신 편이다. 제품을 만들 때 라벨이 달리는 위치, 주머니가 달리는 위치 같은 걸 민감하게 보시는 편이라, 중심선, 끈을 부착할 위치 등을 하나씩 그려야만 한다. 사실 나도 이렇게 하나씩 그려서 다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은 한다. 근데 상황에 따라서라는 '융통성'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가끔은 공임에 맞춰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버지의 고집은 융통성을 이길 때가 많다. 



하루는 판촉물 가방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아버지께서는 어김없이 가방 끈 자리를 다 그려오라고 하셨다. 


"아빠 이거 하나씩 꼭 다 그려야 해요? 그냥 달아도 될 것 같은데... 어차피 판촉물이라 고객도 큰 기대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에 할 말이 없어졌다. "네가 잘 만들어달라면서. 그래서 신경 써주는 건데. 그리고 누가 제품을 그렇게 막 만드냐, 공임이 싸도 할 건 해야지" 


맞다. 잘 만들어달라고 말한 건 나였다. 제품들이 예쁘게 딱 딱 잘 나오길 바라면서도 쉽게 일하고 싶은 요행을 바랐던 거다. 




사실 조금씩 작업을 할 때는 괜찮았다. 가끔씩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단순노동이 재밌을 때도 있다. 다 하고 나면 이만큼 내가 했구나 하고 눈에 보이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 근데 간단하게 그리는 그 그림이 100개, 500개, 1000개, 2000개, 5000개 - 계속 반복되자 이 일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꼭 해야 하는 건가...?




초크는 자주 깨지고 열펜은 계속 닳아갔다. 복잡한 그림은 200개만 그려도 하루가 다 가버렸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 작업인데, 바쁜 날 이걸로 시간을 까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사색에 잠기게 되고.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아진다. 이 작업을 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점을 비교해보고, 효율성을 생각해야 한다며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단호박 대답을 들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생각나는 건,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서 봤었던 달인들의 모습이었다. 매일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선 새벽부터 나와서 반죽을 직접 한다고 했다. 나는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빵 반죽을 해서 얼려두고 그걸 녹여서 매일 빵을 만들면 쉽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끔은 그 반복되는 행동이 귀찮을지라도 그때마다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이 반복적인 일을 몇십 년간 묵묵히 해온 식구들에게 새삼 존경심이 생긴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서 나는 결국 인정을 해야 했다.
나와 아버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른 거라고.




내가 집착하는 포인트는 '납기'였다. 제작 스케줄을 잘 짜 놔도 생산현장에서는 변수가 참 많이 생긴다. 갑자기 공장에 일감이 몰려들어오거나, 월요일에 들어오기로 했던 원단이 갑자기 수요일에 들어온다면, 모든 일정은 엉켜버린다. 그래도 약속한 날짜에 납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처음 스케줄에 맞춰서 강행을 하게 된다. 같이 일하는 브랜드에서는 조금 늦어져도 양해해 줄걸 아는데도, 웬만하면 그날에 보내고 싶어서 무리하게 되는 거다. 최대한 맞춰보는데 그래도 늦을 것 같을 땐 늦는다고 미리 연락을 해서 양해를 구하곤 한다. 아무튼 이렇게 납기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건 나의 집착이고, 일정이 지연되면 불안해지는 나의 심리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버지와 내가 집착하는 부분이 다른 것처럼, 고객들이 중요하게 보는 포인트도 다 달랐다. 어떤 분은 컬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떤 분은 실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자신과 잘 맞는 공장과 생산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기준대로 잘 만들어도 당신이 중점으로 두는 가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잘 만든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만났던 공장 사장님들도 “모름지기 옷이란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기준이 조금씩 달랐다. 정말 다들 저마다의 고집이 있으셨고, 그 고집의 종류는 다 달랐다.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게 좋은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걸 하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