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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eezip May 19. 2022

좋아하는걸 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패션머천다이징산업기사 자격증을 딸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그 자격증이 왜 필요한 거냐고 물었다. 취업을 할 것도 아닌데, 그 자격증이 내 일에 도움이 되느냐고 말이다. 이미 현업에 있어서 시험에 나오는 것보다 더 실무적인 걸 알고 있을 텐데, 형식적인 시험문제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버리는 건 아니냐고도 짚어줬다. 


그러게? 나는 왜 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그 질문에 대답을 하고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가 처음 이 시험을 골랐던 건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이 분야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데, 패션 기획. 섬유. 봉제 등에 대한 내용이 너무나 광범위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근데 시험에는 범위가 정해져있고, 문제집 한 권을 털고 나면 '아 공부 좀 했다'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엔 공부를 하자고 시작한 것인데, 어느새인가 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목표가 된 것처럼 변질되버린 것이다. 


사실 혼자하는 공부는 재밌는데, 

시험공부는 재미가 없다. 


하고싶은 일은 언제나 재밌는데,
해야만하는 일은 재미가 없다. 


글을 쓸 때도 그랬다. 내가 하고싶은 얘기를 쓰는 건 재밌는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아 나서는 건 재미없다. 근데 남들을 위한다고 쓴 글 보다 내 일상과 생각을 쓴 글이 조회수가 더 높더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정답만 알면 되는 걸까, 풀이 과정도 알아야 할까?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봉제 기술자분들이 많다. 오랜 시간 동안 만드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정답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게 정답이냐고 물어보면 해설을 못 듣는 경우가 많다. 왜 여기엔 꼭 절개선을 넣어야 하는 건지, 왜 그 디자인이 구현이 안 되는 건지. 나는 그게 궁금한데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설명은 못해줘도 그게 안되는 건 정확하게 아신다.  


비유를 하자면, 왜 1+1은 2냐고 물어보면 "답은 2지. 2인 이유가 있나. 2라고 써야 한다"라고 하신다. 그럼 나는 또 묻는다. 2/1라고 쓰거나 4/2라고 쓰면 안 되는 거냐. "그게 틀린 건 아닌데 누가 그렇게 쓰냐, 그냥 2라고 써라" 이런 답을 듣게 되는 거다. 그래서 해설지는 스스로 구해야 했다. '그냥 나도 답을 외워버릴까? 풀이 과정이 궁금하긴 한데. 이걸 찾는 게 나한테 도움이 될까? 내가 엄한 곳에 시간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직접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주변에서는 말리는 편이다. 디자인도, 미싱도 결국은 전문가의 영역이 있기에 내가 직접 배우지 말고 그 일을 잘 하는 사람과 일하라는 조언이었다. 내가 할 줄 알아야 보는 눈이 생긴다는 말로 방어를 했으나, 한 가지를 시작하면 땅굴을 파 버리는 내 성향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해준 조언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하고 싶은 일을 못하니까 몸이 근질근질했다. 




결국 난 좋아하는 걸 하기로 했다. 

또 수업을 등록했다. 배우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시험에 떨어져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쓰고 싶은 소재의 글을 쓰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우러 다니자.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된다고 막아두는 걸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편해졌다. 


티셔츠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나는 천가방 만드는 걸 유독 좋아한다.
인정하기로 했다. 이건 진짜 재밌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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