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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솜 Sep 26. 2024

나의 세번째 쉐어하우스

꼬마 공주님이 살고 있던 두번째 쉐어하우스를 나오고 난 세번째 쉐어하우스로 들어갔다.

세 명의 언니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집주인 언니는 유학생으로 제일 큰방을 주인언니와 한 언니가 살고 있었고, 작은방 하나는 더 나이가 많은, 워홀러의 막차를 탄 언니가 살고 있었다.

주인언니의 룸메이트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 언니가 살고 있던 작은방에 지금의 언니가 들어와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주인언니와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학생인 주인언니와 다르게 다른 두 언니는 워홀러였다.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인 언니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상하리만치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고, 돈은 계속 나가니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했다.

작은방의 언니도 워홀비자로 호주에 온지 몇달이 지났지만 일자리는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모드들 나보고 대단하다고, 부럽다고 하는 언니들이었다.


두번째 쉐어하우스의 언니의 남편분이 새로운 쉐어하우스로 데려다 주었다.

크나큰 짐가방을 낑낑대고 가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다고 기어이 데려다 주었다.

같은 동네의 큰 길만 건너면 되는데 말이었다.

"여기에요 삼촌" (나는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마중을 나온 새로운 집주인을 보자 삼촌은 화들짝 놀랐다.

"어? 너가 여기 주인이야?"

"아는 분이세요?"

"어! 우리 교회 다녀!"

아 맞아. 삼촌과 언니는 한인교회에서 만났다고 했지..

같은 한인교회에 다니고 있던 세번째 주인언니였나보다.

"어머! 이런 인연이!"

라며 집을 보러 갔을 때보다 더더욱 얼굴에 화색이 도는 언니였다.

삼촌과 언니는 교회를 다니지만 한번도 교회를 가자고 한 적이 없는데.. 나보고 교회를 가자고 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제일 먼저 든 건 비종교인인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비종교인이라기 보다는 아주 어렸을 때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아 공식적으로는 성당의 신자인 나는, 부모님과 동생이 모두 성당에 다니고 있어 더더욱 걱정이 앞섰다.

세례만 받았지 성당은 더이상 다니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번째 주인언니는 종교생활을 매우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입주 첫 날 모두가 모여 저녁을 같이 먹는데 대화 도중 교회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솜은 교회 다니니?"

"네? 아뇨.."

"아 그래? 삼촌이 교회가자고 하지 않았어? 교회 같이 왔었으면 우리가 먼저 만났을텐데"

"아, 제가 일요일만 쉬어서 항상 늦게까지 잤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안물어보시더라구요"

"아.. 그래?"

"여기 언니들은 다 교회다니는데"

"아, 그래요?"

라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다른 주제로 넘어갔고, 곧이어 술을 마시지 않는 두 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방의 언니는 워홀비자에 제한이 있는 마지막 나이에 신청해서 호주로 온 언니였다.

한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sky 대학에 나와 1타강사로 활약을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호주로 오셨어요?" 라는 내 말에

"너무 지쳐서..." 라고 말했던 만 30세도 채 되지 않았던 언니였다.

그 언니는 나에게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해주었고, 얼마나 치열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러다 얼마나 지쳤는지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도 너처럼 좀 더 일찍 여기로 왔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전 제가 늦게 온 줄 알았어요"

"뭐라고? 나는 학교다닐때 이런데 나와볼 생각을 못했어. 이렇게 혼자 나와서 생활하는 너 보면 너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그래"

"전 한국 돌아가서 졸업하면 뭘 할지 너무 걱정인데요"

"이솜아, 나 봐. 일을 하다가도 여기로 도망쳤잖아. 지금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세번째 쉐어하우스에서 작은방의 언니를 만난 게 나의 워홀 생활 중 최고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굉장한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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