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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솜 Jul 04. 2024

나의 첫 휴가와, 첫 조퇴

호주에서 알바를 하며 느낀점이 있다면, 바로 업무 시간은 칼이라는 것이다.

시작하는 시간도, 마치는 시간도.

한국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미리가고, 조금 늦게 나오는 게 이해를 하지 못하는 그 곳이었다.

출근이야 당연히 조금 일찍 가서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고 치지만, 그렇다고 너무 미리 가면 오히려 그들이 부담스러워했다.

그래도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 10분 정도 일찍 도착을 하면 늘 커피 한잔을 마시며 준비를 하라고 했다.

퇴근 시간이 되었으나 마무리를 하지 못해 마무리를 하고 있으면 왜 퇴근하지 않냐고 묻는 그들이었다.

"이것만 하고 갈께"

"아냐아냐. 그건 다음 사람이 할 일이야" 라며 말이다.

물론 이것은 까페에의 일에 국한된 특성일 수도 있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며 "진짜 그냥 가도 되는거야?" 라고 물었으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오히려 퇴근시간을 칼 같이 지키기 위해 시계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나자신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반면에, 호주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오히려 시급이 더 높게 책정이 되어 있었다. 

각종 복지혜택, 가령 유급휴가라던지,이 없는 비정규직이 시급이 높은 게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워홀러인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그만큼은 무급휴가인 셈이었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몇 달이 흘렀을 쯤, 나는 조심스럽게 사장님께 질문을 하였다.

"저.. 다음주에 쉬어도 될까요?"

"그래? 일주일 통으로 쉬는거야?"

"아뇨. 월화수만요. 저 놀러가려구요"

"오! easter day라서 놀러가는구나? 어디가니?"

내가 여행을 가기로 한 주는 easter day로 호주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라고 한다.

공휴일로 왠만한 곳은 문을 닫고, 내가 일하는 쇼핑몰도 그 기간 중 하루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호주로 와서 정신없이 몇 달을 보냈던 나는 근교로 여행을 가보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근교 여행을 갈 생각으로 투어를 신청했다.

"monkey mia에 다녀올꺼에요"

"돌고래에게 인사를 전해주렴!"

그 때 부터였을까. 쉬는 게 당연해진 나였다.


특히 아프면 무조건 쉬어야했다.

한 번 생리통을 참아가며 일을 하고 있다가 까페 한중간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안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모두가 깜짝 놀라서, 심지어 손님들까지, 무슨일이냐고 아픈 나보다 더 사색이 되어서 날 부축해주던 그들에게 오히려 나는 "아.. 생리통때문에.. 약 먹는 걸 놓쳤더니.."

같이 일하던 친구는 내 팔을 본인 어깨에 두르더니 쇼핑몰의 보건실(?)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이리저리 나 대신 말해주던 친구는 알약 하나를 건네며

"이거 먹고 잠시 누워있어. 괜찮아지면 집으로 가"

"아냐아냐. 약먹으면 괜찮아져"

"아냐. 아플 땐 무조건 집으로 가야해. 오늘 시급은 일 한 걸로 해줄거야"

호주의 진통제는 한국의 진통제와 차원이 달랐다.

먹자마자 10분도 채 되지 않아 멀쩡해진 나는 머쓱하게 다시 까페로 돌아갔다.

"가라니까 왜 왔어!"

"아니.. 내 가방..."

"아! 여기^^ 이제 좀 괜찮니? 얼굴은 괜찮아 보여"

"응. 나 진짜 집에 가도 되는거야?"

"제발 가!" 라며 웃는 친구들을 뒤로 난 그 날 첫 조퇴를 하였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소위 말해 야자가 필수인 시절이었다.

정규수업시간도 아닌 야자일지라도 아파서 못하고 간다고 하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런 학창시절들을 보내다보니 당연히 아파도 학교를 가야하는 게 당연했고,

그게 학습이 되다보니 아픈 걸 내색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던 나에게,

나에겐 그저 매달 찾아오는 하루의 고통일 뿐이었던, 

한 알의 약으로 버티면 됐던 아주 지극히 사소했던 그 생리통이 '병'이었다는 사실을 그 때 난 깨달았다.


그래.

아프면 쉬어야지.

미련하게 버티라고 하는 그들이 이상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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