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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취미를 떠나 보내는 글.

더이상 야구팬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

by 채티밀라

2024년은 나에게 정말 감정의 극한을 경험하게 해준 해였다. 바로 야구 때문이다. 한 경기 한 경기 감정의 끝과 끝을 경험했고 144경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경기가 마치 한국시리즈 7차전처럼 간절했다.


그랬던 나였고 그렇게 좋아했고 애정이 있던 야구였는데 이젠 더이상 좋아하고 싶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야구판에서 떠나고 싶다. 하지만 너무 좋아했기에 이 글을 남긴다.


- 나의 첫 야구팀이자 앞으로도 쭉 좋아할 팀.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챙겨보지 않을 팀.


삼성 라이온즈. 대구 근처에서 태어난 나에게는 당연하게 좋아할 수 밖에 없는 팀이었다. 부모님께서 나를 데리고 간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시작해서 라이온즈파크까지 야구를 챙겨보진 않아도 무슨 팀 좋아하냐고 물으면 삼성 라이온즈라고 대답해오곤 했다.


챙겨보기 시작한 건 2023년 동생이 먼저 야구장에 자주 가기 시작했고 나도 따라가다가 결국 2023년 마지막 경기를 직관하고 말았다. 오승환의 400세이브. 코가 꿰였다. 보통 이런 경기 직관하고 나면 절대 잊을 수 없다던데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 때 이후로 라팍운동회, 유튜브, 직관 등 작년을 보냈고 2023년 8등이었던 성적은 2024년 2등으로 마무리했다. 고점에 물린 것도 있었다. 보는 경기마다 승리를 했고 야구 관련된 글이나 영상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지금 성적이 떨어져서 그런거냐. 작년같은 기량이 안 나와서 그런거냐. 그 말이 틀리지는 않다. 너무 고점을 맛봤기에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고 스트레스 받는 건 사실이다. 스포츠는 승패가 가장 중요한데 이기는 날보다 아깝게, 그리고 힘없게 지는 날들이 많아지는게 팬들 입장에선 너무 힘이 든다. 하지만 단순히 이 이유만으로는 야구판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는다. 야구판을 떠날 것이라는, 더이상 내 취미로도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은 다른 이유에서 왔다.


- 가장 즐거워야 할 야구장이 불편하게 되었다.


야구장 직관을 가면 느끼는 것이 있다.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들이 많다. 누가봐도 비매너 짓을 너무나 당연시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위험한 짓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년 직관을 할 때 한 불펜투수가 올라왔을 때 주변에서 야유를 보낸 것이다. 심지어 우리 팀 선수인데도. 못하고 쳐맞으면서 왜 자꾸 올리냐고. 물론 쳐맞고 나서 아쉬울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런데 등장하자마자 그런 소리를 하면 같은 팀을 응원하는 팬 입장에서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참고로 그 선수는 전날에 잘 던지던 선수였다. 야구장에는 팬들도 있지만 선수들, 코칭스태프들, 심지어 선수 가족들도 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 욕을 하거나 야유를 하는 것. 이게 정말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가?


심지어 SNS나 커뮤니티에서 자주 글이 올라오는 것 중에 하나가 남 품평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남 품평을 할 시간에 본인이나 더 챙기지 남을 헐뜯어서 얻는게 무엇인가?


이 외에 최근 야구가 흥행을 하면서 일어나는 직관에서의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게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고 최악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보니 직관을 가고 싶지 않아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갈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야구장에 다녀오면 그래도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같은 반응이 나와야 되는데 기분이 나빠지는 일들로 인해 그러지 못한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 야구판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은 아니겠지만 유독 도드라진다.


커뮤니티 안 야구 게시판, X 등 야구에 관해 이야기할 자리는 많아졌고 그만큼 미친 사람들도 많아졌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원래 판이 커지면 거기에 비례해서 미친 사람들도 많아진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미친 사람들은 타 팀을 비하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 감정으로. 사실 지역 감정이라는 단어도 싫다. 스포츠라는게 상대 팀이 있고 승패를 가르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는 존중과 리스펙이 필요하다.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고 혹은 자신의 팀이 공격받고 있다는 착각으로 타 팀을 공격해버리는 것이 어느새 만연해졌다.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고 그걸 맞받아치는 사람들도 많아져 결국 판 전체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또, 농담이랍시고 멸칭으로 선수들이나 팀 부르는 것도 싫다. 꼭 그래야만 야구판이 재미있는 건 아니니까. 경기만으로 재미있는 걸 남을 비하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재미라고 볼 수도 없고 그걸 소비하고 싶지도 않다.


프로야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건 너무나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미친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어딜가든 똑같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그걸 판 내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이런 현상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야구판을 떠나지만 앞으로도 이 문제는 중요할 것이다.


- 떠나는 주요 이유는 아니지만 바라는 것.


2024년에 유입이 된 프로야구 팬은 정말 많다. 그런데 유입팬을 배척하는 판은 반드시 망한다. 오래 야구를 본 사람들 중 간혹 야구룰은 아냐, 야구선수 얼굴보고 좋아하는 거 아니냐, 먹으러 직관오는 거 아니냐 식으로 유입팬을 까내리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야구룰 아니까 야구 좋아하고, 야구선수 얼굴 좋아하면 뭐 어떻고, 대부분 사람들이 먹으러 직관오는데 무슨 상관일까 싶다. 오래 야구를 좋아하느 것은 당신의 취미가 오래된 것일뿐 무슨 권리를 지니진 않는다. 구단이나 크보 입장에서는 좌석 사는 사람인건 똑같고 중계보는 사람인건 똑같을텐데.


- 마지막으로.


1년 동안 정말 사랑한 취미였고 나의 기쁨과 슬픔, 분노의 모든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두 달 동안은 야구를 길티플레저처럼 취급을 했었는데 이제 정말 내가 지친 것이 느껴진다. 여전히 나는 삼성라이온즈를 좋아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응원한다. 하지만 내 일상이 야구로 가득 차지는 않을 것이다. 야구판에서까지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앞으로도 한국 프로야구가 흥행하길 간절히 바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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